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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남진이 8월 19일 KBS 가요무대에 출연합니다. 

 

1965년 데뷔해 2024년 기준 데뷔 59년차이며 70대 후반인 현재도 현역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 가요계의 산증인이자 레전드인 가수 남진입니다.

 

이에 가수 남진 나이 프로필 아내 자녀 근황 등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가수 남진에 대해 알려진 정보를 모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남진(가수)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종교 학력 소속사 

 

남진

 

가수 남진의 본명은 김남진입니다. 남진 나이는 1946년 9월 27일생으로 올해 나이 79세입니다. 남진 고향은 전라남도 목포부 창평동(현 목포시 창평동)이며, 3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가족으로는 아버지 김문옥과 어머니와 형 2명과 남동생 1명과 아내 강정연과 딸 3명과 아들 1명을 자녀로 두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생전에 언론인이자 정치인으로 전라남도 제 5대 민의원을 지내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남진은 키가 172cm라고 하고요, 종교는 개신교(예장합동, 새에덴교회 장로)입니다. 학력은 목포북교초등학교, 목포중학교, 목포고등학교, 서라벌예술대학 중퇴,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진은 오빠부대의 원조격이라 불릴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었던, 자타공인 1970년대 한국 가요계의 아이콘으로서 라이벌인 나훈아와 함께 한 시대를 양분했던 슈퍼스타입니다. 

 

1965년 데뷔해 2024년 기준 데뷔 59년차이며 70대 후반인 현재도 현역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 가요계 역사의 산증인이자 레전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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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가수) 집안 과거 

 

 

남진은 전라남도 목포에서 목포일보의 발행인이자 제 5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문옥의 늦둥이 겸 차남으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어린시절부터 연극과 음악에 심취했다고 합니다. 

 

남진의 집안은 전쟁 직후인 1950년대에 집에 자가용이 있었을 정도로 목포에서 상당히 부유했다고 하는데요, 남진은 그런 성장 환경에서 학생 때부터 닐 세다카나 퐁 앵카 등의 팝송을 즐겨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 영화배우가 되고싶은 마음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면서 서울로 상경하게 됩니다. 

 

남진(가수) 데뷔 앨범 활동

그리고 한 레스토랑에서 팝송을 불렀다가 밴드마스터에게 가수 제의를 받고, 불과 몇개월 후인 1965년 정규 1집 앨범 서울 플레이 보이를 발표하고 데뷔하게 됩니다. 

 

 

하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해 실망한 나머지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이후 다시 작곡가 한동훈이 당시 오아시스레코드사의 전속가수 제안을 하고, 두 번째 음반을 발표하게 됩니다.

 

해당 음반은 첫번째 음반과 달리 방송도 타고 히트 바로 직전까지 갔지만, 당시 노래 제목이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국가에 의해 금지곡 처분이 되어 결국 두 번째 음반도 실패하게 됩니다.

 

이에 그는 다시 고향 목포로 내려가 술로 세월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그러다가 그의 어머니가 두번째 앨범에 담긴 다른 곡인 울려고 내가 왔나라는 트로트 곡을 밀면서 이 곡으로 다시 도전할 것을 권유했고, 이 곡이 대히트를 치면서 남진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기 시작합니다.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일단 트로트 곡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이듬해인 1966년 가슴 아프게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서 그해 MBC 신인가수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또한 동명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해서 영화배우로도 활약하기도 하며 가요계와 영화계를 넘나드는 빅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로 나온 로커빌리 스타일의 불멸의 히트곡인 마음이 고와야지는 그를 단순히 트로트 가수로만 국한시키지 않고, 가요계의 독보적인 캐릭터로 인정받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잘생긴 얼굴,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를 모방한 창법과 무대 액션에 당시의 소녀 팬들은 열광하기 시작했고, 이는 그후 그대여 변치 마오, 님과 함께 같은 대표곡으로 이어졌습니다. 

 

남진(가수) 월남전 참전

 

 

그러다가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던 때인 1968년 해병대 청룡부대(해병 2여단 2대대 5중대 2소대)에 입대해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합니다. 

 

원래 1년간 파병가기로 되어 있었지만, 귀국하여 베트남에서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는 것은 대한남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여단장에게 부탁해서 2년간 파병생활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남진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는 것은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나왔었는데요, 영화(국제시장)에서는 유노윤호가 남진 역으로 출연했습니다.

 

남진(가수) 월남전 참전 이후 나훈아와 라이벌 구도

 

 

제대후 남진은 재기에 성공했고, 당시 촉망받는 신인인 나훈아와 가요계의 쌍벽으로 군림하게 되었는데요, 라이벌 구도였지만 실질적인 1위는 남진이었고, 음악성은 나훈아가 좀 더 높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1972년 나훈아 피습사건이라는 큰 사건이 터졌고 이때 나훈아 피습사건의 범인으로 낙인이 찍혀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 방송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습니다. 

 

남진 : "몇십 년 지나서 안 사실이다. 신성일 선배한테 그 괴한이 제일 먼저 갔더라. 그 다음으로 저한테 왔다. 아침에 인기척에 눈을 떴는데 머리맡에 모르는 얼굴이 있었다."

 

남진 : "괴한이 당신 라이벌을 해치면 돈을 줄거냐고 말을 하더라. 정상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 있다가 사고가 난 거다. 나중에 저희 목포 집에 와서 방화도 하고 그랬다. 어머니가 계신 집이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픈 게,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초상화가 탄 게 지금도 성질이 난다."

 

남진(가수) 전부인 윤복희 결혼과 이혼

 

 

그러다가 남진은 1976년 가수 윤복희과 결혼을 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1975년 동거를 시작, 1977년결혼에 골인하게 되었습니다. 남진과 윤복희 두 사람은 동갑의 나이로, 당시 남진은 첫번째 결혼이었고, 윤복희는 재혼이었다고 합니다.

 

윤복희는 전 남편 유주용(직업 가수)과 1968년 결혼해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떠났지만 1975년 이혼했다고 합니다.(윤복희는 지난해 방송을 통해 75년에 이혼했다고 하지만 사실 법적으로는 1985년에 이혼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진과 윤복희의 결혼 생활은 그리 길지 못했는데요, 두 사람은 결국 불과 3년 7개월 만인 1979년 3월 9일 이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윤복희가 한 방송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두 사람은 실질적으로 약 6개월간 동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남진은 "남진이 윤복희를 내쫓고 폭행했다"는 루머가 돌면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나중에 윤복희가 진실을 고백하게 되면서 오해가 풀리게 됩니다. 

 

윤복희 : "4-5년 남편(직업 가수 유주용)과 결혼생활을 하다 75년도에 한국에 들어와 윤복희 특집쇼를 하게 됐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니 남편이 신문을 들고 공항에 마중나와 있었다. 그 신문에는 한국에서 누가 나를 사랑한다는 기사가 게재돼 있었고 그 주인공이 남진이었다"

 

윤복희 : "내가 사랑한 건 남편(유주용)뿐인데 스캔들에 나약해진 남편에게 서운했고, 홧김에...남진의 사랑을 우리 남편 보라고 이용했다. 고백한 사람의 순정을 이용했다."

 

 

윤복희 : "사랑한 게 아니니 이용이었다. 그래서 그분한테 미안한 마음이 커 6개월 후 결혼반지를 돌려주고 끝냈다. 두 남자에게 아픔을 줬다는 죄책감에 1978년부터 혼자 살고 있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서 당시 남진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는데요, 그럼에도 남진은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이 모든 비난을 뒤집어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윤복희가 무릎팎도사에 나와서 이와 같은 고백을 하자 남진은 30여년만에 처음으로 측근을 통해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남진 측근 : "남진 씨는 워낙 남자답고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라 당시 인기스타로서 리스크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로서 윤복희를 최대한 배려해 줘야 된다 생각하고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지금에 와서 가타부타 말을 한다는 것은 그에게 더욱 수모를 안기는 일일 것이다"

 

 

윤복희 : "그런데 오빠 일 문제로 한국에 들어오게 됐고, 저희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분(남진)이 약혼을 하자며 다이아 반지를 가져왔어요."

 

윤복희 : "그러면 안 됐는데, 제가 그 반지를 받았고 그 자리에서 약혼을 하게 됐죠. 이 소식은 곧장 신문에 보도됐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결혼도 진짜가 아니었어요. 남편이랑 이혼도 안 했는데, 무슨 결혼이요?"

 

윤복희 : "나는 유부녀였어요. 남편(유주용)과는 1985년에 이혼했죠. 어느날 교통사고를 당했고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그때 느낀 게 내가 정말 큰 실수를 했다 는 거였죠. 그분에게 집까지 모두 주고, 딱 30만 원만 주머니에 넣고 나왔어요"

 

윤복희는 전남편 유주용과 1985년까지 결혼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중간에 한 남진과의 결혼은 중혼으로 원천 무효가 되는 것이라고 하네요. 

 

이후 남진은 1980년에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정치적 탄압을 받게 되었고, 그 시점부터 남진은 가수 활동을 그만두고 재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당시 남진과 나훈아는 결혼과 이혼으로 이미지가 좋지 않았고, 동시에 방송 출연이 줄어들고 조용필의 등장으로 점차 가요계의 주도권을 내주게 됐습니다. 

 

 

남진(가수) 결혼 아내(부인) 강정연 나이(차) 직업, 누구?

 

 

이후 남진은 1980년 지금의 아내(부인) 강정연을 만나 두 번째 결혼(실질적으로는 첫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남진 아내(부인) 강정연은 재미교포였고, 당시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남진의 아내(부인) 강정연 씨에 대해서는 고향 국적 학력 직업 등 자세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남진은 아내(부인) 강정연을 김세레나의 중매로 만나게 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남진이 미국 행사에 참석했다가 김세레나의 지인들 중 우연히 아내 강정연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진 : "그때 미국에 공연을 가서 선배(김세레나) 소개로 처음 집사람을 만났다. 재미교포 집사람은 솔직하고 성격도 강하다. 인연이 돼 한국에 왔는데 어머니가 전라도에서 제일 유명한 점집 10군대에서 점을 보고 다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직접 혼인신고를 해버렸다"

 

그런데 남진과 아내 강정연은 결혼 이후 계속해서 딸만(3명) 낳았다고 하는데요, 그러자 남진의 어머니는 이를 반가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네째로 아들을 낳아 총 1남 3녀를 두게 됩니다. 

 

남진 : "어머니가 생전 내가 가수왕 상을 받고 인기가 있어도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한번도 안했는데 넷째 아들을 낳으니까 그제서야 성공했다고 하셨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돌연 남진의 아내인 강정연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데요, 바로 딸 세 명의 대학 입학을 위해서 남진의 아내(부인) 강정연이 브로커를 동원했다는 혐의 때문이었습니다.

 

대학 부정 입학으로 2001년 새해 벽두를 뜨겁게 달구던 사건이었고, 이후 남진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내의 일이라 좋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미 오래된 사건이고, 현재는 딸들도 시집을 잘 가서 모두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남진 딸들은 여러 방송을 통해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남진(가수) 결혼 이후 

 

 

한편, 남진은 지금의 아내(부인)와 결혼 후 몇 년간 미국에서 지내다가 1982년 귀국과 함께 빈잔을 발표, 크게 히트하게 됩니다. 하지만 약 3년 간의 공백으로 가요계에는 수많은 가수가 등장하였고 결혼 후 신인시절처럼 그다지 인기를 많이 얻지는 못했습니다.

 

이에 남진은 1985년에 고향인 목포로 내려가 유흥업소를 운영하기도 했는데요, 그러던중 조직 폭력배와 난투극 중에 중상을 입어 몇 차례 대수술을 받으며 잠시 휴식기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1993년 남진은 1993년 내 영혼의 히로인을 발표, 다시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후 둥지, 저리 가, 나야 나 등을 발표하며 지금까지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외 남진은 2008년 초대 대한가수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약 3년 간 역임하기도 하였고, 2009년에는 장윤정과 함께 당신이 좋아를 발표하여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또한 남진은 2010년에는 데뷔 45주년 기념 음반을 발표하고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미스터트롯을 통해 트로트 중흥기를 맞은 이후 각종 가요 프로그램을 통해 더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가수 남진인데요, 이번에는 가요무대에 출연하게 되었네요. 

 

앞으로도 좋은 무대와 다양한 활약 이어가는 모습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가수 남진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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