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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불암이 9월 18일 tvN 스토리 회장님에 사람들에 출연합니다.
이날 방송에서는 전원일기 이후 20여년만에 만난 최불암과 김혜자의 이야기가 공개됩니다. 김혜자는 앞서 지난 48화를 통 김회장네와 일용이네를 처음 방문한 것에 반해 최불암은 회장님네 사람들 2화 방송에서 이미 전원 패밀리들과 해후를 나눈 바 있습니다.
공개된 예고영상에서 최불암은 전원일기 당시를 추억하며 논밭 풍경과 정취를 한껏 느끼며 전원 마을로 향합니다. 그 후 최불암이 버스 정류장에 마중 나온 김혜자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도 반가움을 숨기지 못하는 장면이 등장해 보는 이들의 마음도 뭉클하게 만듭니다.
김혜자 역시 "보면 되게 그리울 것 같아요. 우리는 정말 오래된 친구"라며 행복해합니다.
이날 방송으로 최불암 나이 프로필 근황 등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배우 최불암에 대해 알려진 정보를 모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최불암 프로필 본명 나이 고향 가족 키 종교 학력
배우 최불암의 본명은 최영한입니다. 최불암 나이는 1940년 6월 15일생으로 올해 나이 83세입니다. 최불암 고향은 경기도 인천부 금곡정(현 인천광역시 동구 금곡동)이며, 가족으로는 아버지, 어머니, 아내 김민자와 슬하에 1남 1녀로 아들 최동녘과 딸 최동비가 있습니다.
최불암은 키가 175cm이라고 하고요, 종교는 천주교(세례명 프란치스코)이며, 학력은 인천신흥국민학교, 중앙중학교, 중앙고등학교, 서라벌예술초급대학 연극영화과 전문학사,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명예학사, 호남대학교 명예박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불암 집안 과거
최불암은 사업가인 아버지와 대한제국 궁내 악사를 지낸 집안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최불암의 가족 중에는 독립운동가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최불암을 임신한 모친을 국내에 두고 독립운동을 하는 형제들을 따라 중국으로 들어갔고, 해방이 될 때까지 중국에서 사업을 해 큰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 만주에서부터 인천까지 말을 타고 귀향했는데, 말안장에는 돈과 보석이 잔뜩 실려있었다고 합니다.
최불암의 부친은 만주에서 가져온 돈으로 해방 직후 인천에 영화사(건설영화사)와 신문사(인천일보)를 차렸지만 직접 제작한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당시 6살에 불과했던 최불암은 부친의 영정을 들고 영화 시사회에 참석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후 모친 이명숙 여사는 서울 명동에서 은성이라는 대폿집을 열었는데, 현재 명동 ARITAUM 매장 자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 곳은 금방 당대 문화인들의 사랑방이 되었고, 봉구주점이란 별명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최불암은 단골이었던 당대 문화인들과 대화에 끼기에는 아직 어렸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 예술에 대해 처음으로 많은 것을 알려준 곳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불암 배우가 된 계기
최불암은 이후 서라벌예술초급대학에서 연극의 매력에 빠지기도 했지만 자신의 외모가 평범한 것을 알고는 연출자나 감독의 꿈을 꾸게 됩니다.
그러다가 최불암이 자기가 연출을 맡은 연극의 배우가 연기를 못하자 대신 무대에 올라 1959년 국립극장에서 연극 햄릿으로 데뷔, 연극에서 나이 많은 배역을 그럴 듯하게 소화하는 것을 본 연출자가 최불암에게 노역을 맡깁니다.
그리고 이후 서라벌예대를 졸업한 최불암은 연극무대에 뛰어들게 되었는데요,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에는 할 게 없어서였다고 합니다.
최불암 연극배우 시절
최불암 :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연극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명동서 운영하던 은성도 썩 잘 되지 않던 터라 집안 살림이 무척 쪼들릴 때였다. 부정기적으로 서는 연극무대 수입으로는 생활비는 커녕 대포 한두잔 값을 치르기에도 부족했다."
최불암 : "용돈이라도 벌 요량으로 시작한 게 국립극장 엑스트라였다. 엑스트라에게 돌아오는 배역이란 건 뻔했다. 행인, 군중 등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배역이 대부분. 당시 나는 엑스트라 중에서도 가장 초라한 포졸이나 병사 역을 주로 맡았다."
최불암 : "고생은 했지만 엑스트라를 하면서 배운 것도 많다. 당시는 연극계 대선배인 이향, 백성희 선생이 국립극장 주연배우를 맡던 시절이었다. 나는 이향선생의 대사를 모조리 외웠다."
최불암 : "그 분이 무대에 올라가 연기를 하면 나는 무대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이향선생의 대사를 읊조리며 그의 몸짓을 흉내내면서 독학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최불암은 단역과 엑스트라만 전전했고 그러다가 한양대에서 영화과 1회 입학생을 뽑는데, 기성 연극인을 특차로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여기를 나오면 좀 더 잘될까 하는 생각에 친구들과 함께 나란히 입학합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대학교농촌순례위문단을 조직해서 전국의 농촌을 돌면서 영화상영과 연극공연을 펼칩니다. 그러다가 3학년때 군에 입대했고(당시 최불암은 아버지 사망 독자였기에 굳이 군대를 갈 필요는 없었다고 함) 제대후에는 등록금을 마련할 수가 없어서 복학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후 최불암은 부산에 있는 작은 아버지의 염색 공장에도 잠깐 다녀보기도 하는데, 적성이 맞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는 다시 서울로 올라옵니다.
최불암 :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오니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복학을 포기했으니 돈이라도 벌어야했지만 마땅한 취직자리가 없었다. 함께 연극을 하던 친구들은 TBC 등 방송국에 입사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자존심때문에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지도 못했다."
최불암 : "그때는 능력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미웠다. 나는 이 세상에서 살 가치도 없는 인간처럼 여겨졌고, 그게 참을 수가 없었다. 자살을 결심하고 한강으로 갔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강가에만 가면 나 하나만 믿고 사는 어머니가 생각나 되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괴로워하던 최불암은 갑자기 집근처에 있는 교회를 떠올리고는 거기를 찾아가 우연히 의미있는 설교를 듣고는 자신이 할일은 연극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최불암 : "나는 자존심때문에 만나지 않았던 친구들을 스스로 찾아가 만났고, 연극무대에도 다시 섰다. 그 얼마 후 출연한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는 목에서 피가 터질 정도로 열심히 연습을 했다."
최불암 : "이어서 출연한 작품이 연극 순교자다. 작고한 친구 김기팔이 각색하고 허규씨가 연출한 이 작품으로 나는 비로소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원하던 국립극단 단원이 될 수 있었다."
이후 최불암은 그렇게 연극계에서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이십대의 수많은 배우중의 한명이었기에 최대한 튀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노력이 도를 지나쳐 연출자의 애정어린 노여움을 사기도 합니다.
최불암 : "이순신에 출연할 때였다. 함께 출연하던 후배가 연습때 대사가 되지 않는다고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그 대사는 승전보고 였는데 무척 극적이어서 잘만 소화하면 조연중에서 가장 튈 수 있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대사를 꼭 하고 싶어 안달하다 후배를 회유하기로 결심했다."
최불암 : "공연을 마치고 대포집으로 후배를 데리간 나는 그에게 술을 실컷 먹인 후 승전보고를 둘이 동시에 하자는 얘기를 꺼냈다. 잠시 당황하던 후배는 술을 얻어먹은 죄로 마지못해 승낙을 했고 다음날 공연에서 나는 후배와 함께 승전보고를 했다."
최불암 : "그러나 연극이 끝난 후 나는 연출을 맡았던 이진순 선생에게 불려가 혼쭐이 났다. 허락도 없이 함부로 배역을 바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선생은 한참 야단을 치신 후에 그래도 너 연기는 참 잘하더라 며 칭찬을 해주셨다."
최불암 배우 데뷔 작품 활동
이후 최불암은 1966년 MBC 라디오 드라마에 첫 출연하게 되었고, 이듬해인 1967년, 28살의 나이로 아내 김민자로 인해 서울중앙방송(지금의 KBS 한국방송공사) 공채 2기 탤런트로 데뷔합니다.
그리고 이후 1969년 MBC 개국 이후 특채 탤런트로 스카우트 되어 대박을 많이 터뜨렸고,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이후 최불암은 2000년대 초반까지 거의 MBC 전속이나 다름없이 계속 MBC에 출연하게 됩니다.
최불암은 특히 1971년에서 1989년까지 MBC에서 방영했던 최장수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주인공 박 반장, 1980년에서 2002년까지 동 방송국에서 방영된 전원일기에서 양촌리 김회장 역을 맡아 따스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로 국민아버지라는 칭호를 받기도 합니다.
최불암은 젊었을 때(29세 때)부터 주로 나이 많은 노역을 맡는 경우들이 많았는데요, 특히 MBC에서 방영된 제 1공화국과 제 2공화국에서는 이승만 역할을 맡아 화제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제 1공화국 당시 80대였던 이승만 역을 맡았을 때 그의 나이는 겨우 40세였다고 하네요.
최불암은 이후 2004년에는 비슷한 연배의 배우인 오지명, 노주현과 함께 코믹영하 까불지마를 찍어 새로운 도전을 하기도 했지만 크게 흥행을 하지는 못합니다.
최불암은 이후에도 드라마 영화 등에 간간이 출연하며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는데요, 2013년 이후로 주로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2019년 이후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얼굴을 보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최불암 연기 외 활동
최불암은 배우 활동 당시 드라마 외에 KBS의 좋은나라 운동본부에 반고정 패널로 장기출연하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즐겨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81년에 만화 주제가를 부르기로 유명한 정여진과 함께 듀엣을 낸 적이 있는데, 아빠의 말씀이라는 음반으로, 엄밀히 말하면 최불암은 내레이션, 노래는 정여진만 불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래는 원곡은 명배우 안소니 퀸이 부른 유명 팝스 Lifeself will let you know로 배우로서 안소니 퀸을 동경했기 때문에 섭외가 들어왔을 때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당시 그가 전원일기에서 금동이를 입양한 때였기에 더욱 더 곡이 자신에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후 몇 차례 방송을 통해 정여진과 만남을 가지기도 했는데요, 지난 2020년 1월 슈가맨3에서 정여진과 함께 등장해 슈가송으로 아빠의 말씀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최불암은 또 한국인의 밥상 등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과 아마겟돈 애니메이션의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는데요, 한국인의 밥상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불암은 또 과거 14대 총선에서 통일국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당선, 제 14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1996년 4월 15대 총선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김민석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에 의해 낙선했습니다.
최불암 결혼 아내(부인) 김민자 나이(차), 누구?
최불암은 아내(부인) 배우 김민자와 1970년 6월 27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최불암과 아내 김민자 두 사람의 나이차는 최불암은 1940년생인 83세이고, 아내 김민자는 1942년생인 81세로 2살 차이가 납니다.
최불암 아내 김민자 역시 배우로, 1961년 연극배우 첫 데뷔 이후 1963년 KBS 3기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여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청순가련한 외모로 상당한 인기를 끈 바 있습니다. 박순천 여사 역할로 유명한 성우출신 원로배우 김소원이 그의 언니이고, 배우 최아린의 이모이기도 합니다.
최불암 아내 김민자 결혼스토리
참고로, 사실 최불암은 연극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당시 늘 친구들에게 자신의 미래 부인상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최불암 : "친구들에게 이상적인 배우자상을 들려주곤 했다. 당시 내가 찾던 배우자감은 이지적인 분위기에 눈이 크고 오똑한 콧날에 도톰한 입술을 가진 전형적인 미인형의 여자였다."
최불암 : "젊은 시절, 배우가 되기에는 얼굴이 너무 평범해 고민하던 나는 2세만은 그 문제로 갈등하지 않도록 예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최불암이 국립극단에 속해 있을 당시 결혼하라는 집안의 압력에 못생긴 얼굴로 배우를 하면서 다음 세대에는 한을 풀자는 생각에 친구들이 결혼상대로 당시 유명 연예인이었던 김민자를 추천, 이후 우연히 방송을 통해 아내 김민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최불암 : "1966년도에 연극 따라지의 향연을 했다. 분위기가 굉장했다. 화제가 됐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일곱인가 그랬을 거다. 국립극단에 가고 살만하니까 장가갈 생각이 나서 과연 나하고 잘 맞는 배우자가 누굴까 생각했다."
최불암 : "친구들이 방송국에 있는 여배우를 이야기하더라. 스물일곱의 결혼적령기, 아내감을 고르던 나는 귀가 솔깃했다. 집에 TV가 없어서 누구냐고 했는데 친구들이 빵집 가서 8시 방송을 보라고 하더라. 그걸 보니까 김민자였다."
최불암 : "친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외모와 분위기를 모두 갖춘 여자였다. 그 사람이랑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불암은 아내 김민자를 만날 방법이 없던 차에 김민자가 점심시간에 KBS 매점에 온다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매점에서 양복을 입고 아내 김민자가 오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최불암 : "팥 만두랑 커피를 먹었던 것 같다. 양복을 입고 가서 기다렸다. 신문을 들고 구멍을 뚫고 봤다. 신문 보는 척하고 동태를 살폈다. 그게 몇 차례 됐다. 너무 떨렸다."
최불암 : "(김민자가 일행에게) 다 먹었으니 가자라고 하더라. 그 때 내가 일어나서 그 사람 먹을 걸 내가 몰래 계산했다. 그랬더니 집사람이 내게 누구신데 계산을 하느냐고 묻더라. 이름 덕을 봤다. '최불암입니다' 라고 하고 인상만 남겨주고 나왔다. 그게 잘한 건지 못한 건지 갈등이 되더라."
최불암은 아내 김민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KBS 매점을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고, 또한 최불암은 당시 엄청난 스타였던 김민자와 가까이 가기 위해 그 역시 방송계로 진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불암 아내 김민지와 결혼을 위해
하지만 김민자와는 가까워질 수 없었던 최불암은 결국 꽤를 내게 됩니다.
최불암 : "당시 아내는 새 드라마 흙에 주연급으로 캐스팅돼 있었다. 나는 담당 연출자인 박재민 PD를 만나 그녀와 함게 출연시켜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내 뜻은 받아들여졌고, 나는 상대역을 맡아 아내와 좀 더 가까워지는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둘은 같은 드라마에서 상대역이 되면서 가까워졌고, 김민자 역시 최불암이 마음에 들어서 연애를 시작하지만 주위에서는 둘의 연애에 대한 반대가 컸습니다.
당시 최불암은 그냥 성격파 무명 배우였고, 김민자는 여주인공으로 이름을 날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최불음은 하루 빨리 결혼을 하고 싶었는데 김민자는 확답을 하지 않습니다.
최불암 : "KBS 드라마 흙에 출연하면서 아내와 나는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데이트는 퇴계로에 있는 프랑스풍의 카페에서 주로 했다. 우리는 없는 돈을 털어 와인을 마시고 에디트피아프의 감미로운 샹송을 들으며 사랑을 쌓아갔다."
최불암 : "하지만 아내는 결혼얘기만 꺼내면 언제나 딴청을 피우거나 어두운 얼굴이 되곤 했다. 그 이유를 나는 알고 있었다. 아내의 집안에서 나를 반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불암 : "당시는 탤런트들의 출연료가 그리 많지 않을 때였다. KBS 사극 수양대군에 출연했을 때 나는 당시 쌀 두가마니 값에 해당하는 출연료를 받은 적이 있다."
최불암 : "그 돈으로 두 사람이 생활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더 잘 아는 터였다. 하지만 돈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우리 사이가 평행선을 그으며 별 진전이 없이 계속되던 어느 날 방송국으로 기자들이 찾아왔고 나는 첫만남처럼 또 한번의 깜짝쇼를 연출했다."
최불암은 고의적인 스캔들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사진 기자들이 방문하자, 최불암과 김민자는 같이 사진을 찍었고 다음날 둘의 관계가 묘하다는 루머성 기사가 나간 것입니다. 결국 완강하게 반대하던 김민자의 집안에서도 허락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김민자 : "둘의 교제할 당시에 남편이 젊었을 때고 또 나와 사귀는 것이 부담을 주었기 때문인지 술을 좀 많이 마시곤 했는데 내가 이사람을 버리먼 타락을 할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됐다. 모성 본능 같은 것이 작용한 것 같다."
최불암 : "아내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결혼 당시 2년 동안 집안에서 반대를 했지만 숱한 노력 끝에 반대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 얘기를 다 하자면 역사책을 써도 모자라다."
결국 둘은 4년의 연애 끝에 1969년 약혼을 하고, 1970년 6월 27일 결혼식을 올립니다.
최불암 아내 김민자 자녀 아들 딸
그리고 둘은 결혼 이후 아들 1명과 딸 1명을 낳아 슬하에 아들 최동녘과 딸 최동비를 두게 됩니다.
아들 최동녘은 배우 서승현의 외동딸 황유선과 지난 2002년 10월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불암의 외아들 최동녘과 서승현의 외동딸 황유선 두 사람은 둘 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이후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전문직 종사자로 알려졌습니다.
세 살 때 만난 인연이 결혼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최불암 아내 김민자 결혼생활
그런데 최불암 김민자 부부는 결혼 이후 신혼 초부터 많이 싸웁니다.
최불암 : "여의도에 신접살림을 차린 우리는 여느 부부들처럼 티격태격 하며 신혼기의 대부분을 보냈다. 결혼생활은 연애와는 달랐다. 무엇보다 아내는 술과 친구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최불암 : "술에 만취해 귀가하기 일쑤였고, 툭하면 친구들을 집에 불러 거나하게 술판을 벌였다. 친구들이 돌아가고 내가 술에 취해 쓰러지면 아내는 술상앞에서 밤새 울곤 했다."
젊은 시절부터 술을 좋아했던 최불암이었기에 그것이 불화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김민지 : "신혼 3년간은 뭔가 맞지 않는 것같아 의견 다툼이 많았다. 결혼생활은 자연스레 맞는 것보다 부부가 서로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은 그렇게 점점 더 나빠졌고, 이혼까지도 목전에 두게 됩니다. 그러나다 최불암은 예전처럼 다시 한번 자신을 뉘우치게 됩니다.
최불암 : "나의 술습관은 71년 MBC 드라마 수사반장에 출연하면서 사라졌다. 나는 인생을 다시 배웠다고 해도 과연이 아닐 정도로 그 다라마에서 배운게 많다. 수사반장은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사회고발 드라마였다."
최불암 : "내가 맡은 박반장 역은 치안을 책임지는 안방의 보안관이자 사회를 계도하는 큰어른이었다. 이런 역할을 맡은 연기자가 매번 술에 취해 비틀거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 이후 최불암은 술을 줄이고 가정에 충실하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이때부터가 우리가 잘 아는 국민 아버지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후 김민자는 차츰 연기 활동을 줄여나가면서 거의 은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치불암 : "아내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어요. 가정을 지키겠다고 연기활동을 중단했거든요. 요즘도 좋은 작품에서 출연제의가 들어오는데 그 사람은 안 하겠다고 해요."
최불암 : "자신까지 나오면 집은 누가 지키냐고 하면서 말이죠. 항상 가족을 위해 살아온 아내가 만드는 음식은 어떤 것이든 다 맛있어요."
하지만 사실 김민자는 드라마계에 대한 불만과 연기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드라마 출연을 고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김민자 : "이제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꽤 오래됐어요. MBC 드라마 보고 또 보고에서 못된 시어머니 역을 맡았을 때 트히 힘들었죠. 극중 며느리로 나왔던 김지수씨가 고생했던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김민자 :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대문을 안 열어주는 장면이었거든요. 연기지만 제 모습이 정말 싫고 속상하더라고요. 촬영장 분위기와 시스템이 바뀌면서 낯설게 느껴진 것도 브라운관을 떠난 이유고요."
김민자 : "80년대 초에 일일드라마 보통사람들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3대가 함께 사는 집의 맏며느리 역할이었는데 가족간 훈훈한 사랑을 그리는 게 좋았어요."
김민자 : "요샌 그런 게 드물어요. 젊은이들의 사랑과 이별 얘기가 대부분이야. 물론 배우에게 은퇴한 없습니다. 지금도 섭외는 꾸준히 들어와요. 수락하지 않는 건, 당장이라도 출연하면 용돈을 벌 순 있겠지만, 재미나 보람이 아닌 일로만 여겨질 것 같아서예요."
최불암 아내 김민자에 대한 애정
두 사람은 약 50년이 가까운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특히 최불암은 팔불출 소리를 들을 만큼 소문난 애처가라고 합니다. 아내가 보고플 때면 촬영장에서도 간간히 핸드폰 속에 저장해둔 사진을 꺼내볼 정도라고 합니다.
최불암은 결혼 50년이 지난 지금도 아내 김민자 얼굴을 보기만 해도 여전히 설렌다고 하는데요, 그는 자신이 만든 부부의 맛을 숭늉같이 구수한 맛이라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최불암은 결혼 이후 아내를 위해 천주교 세례를 받고 혼인 갱신식을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원래 불교가 종교라고 알려져 있는 최불암은 아내를 위해 천주교로 개종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최불암은 "아내가 성당을 다니는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고 했고, 이에 김민자는 "28년 전 세례 받아 이제 남편도 세례 받게 돼 기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회장님댁 사람들에 출연하게 된 배우 최불암인데요, 앞으로도 건강하고 좋은 모습 시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배우 최불암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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