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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부른다' 성악가 김동규, 박창근과 듀엣 무대 

 

성악가 김동규

 

성악가 김동규가 6월 30일 TV조선 국가가 부른다에 출연합니다. 

 

 

이날 방송에서는 가수 채연, 바다, 자두, 딕펑스(김태현, 김현우, 김재홍, 박가람), 박서진, 포맨(하은, 요셉, 한빈)까지 자타공인 무대의 신들이 출연해 여름밤을 시원하게 책임집니다. 

 

이날 특히 노래하는 창근이 코너에서는 성악가 김동규가 함께 하게 되는데, 김동규와 박창근은 마이 웨이를 선곡해 성악과 포크가 조화를 이루는 또 하나의 역대급 무대를 탄생시킵니다. 

 

특히 김동규는 "박창근은 느낌과 의미를 잘 전달하는 가수"라고 극찬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등 여운이 남는 무대를 선보입니다. 

 

이에 성악가 김동규 나이 프로필 근황 등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래서 오늘은 성악가 김동규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모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동규(성악가) 프로필 나이 고향 학력 소속사

 

성악가 김동규

 

성악가 김동규는 1965년 11월 14일생으로 올해 나이 58세입니다. 김동규 고향은 서울이며, 학력은 광운중학교, 서라벌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성악과 학사,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동규의 현재 소속사는 플러스 에터테인먼트, 디케미올라 엔터테인먼트 소속이라고 합니다. 

 

김동규(성악가) 집안 부모 어린시절

 

성악가 김동규

 

김동규는 음악가 집안 출신입니다. 아버지 김한준이 작곡가이고, 어머니 박성련이 소프라노 출신입니다. 다만 원래붜 집안 형편이 넉넉했던 것은 아닙니다. 김동규 어머니 박성련은 전라북도 무주 출신이었고, 원래는 중학교를 갈 형편이 되지 못했을 정도로 가난했다고 합니다. 

 

 

박성련 : "교복을 입은 또래들이 부러워 중학교를 보내달라며 한 달 동안 밥까지 굶는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들어간 중학교에서 처음 성악을 접하게 되었어요."

 

이후 박성련은 학비와 기숙사비를 벌기 위해 식모와 교회 청소 등을 하면서 어렵게 고학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 때 우리나라 초연 오페라였던 일트로바토레의 주역인 레오노라 역할로 성악가가 됩니다. 

 

그리고 그런 후에도 소프라노 성악가, 중학교 음악 선생, 레슨 교사 등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김동규는 이런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고, 또 양친 모두 음악인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며 자라게 됩니다.

 

김동규 : "음악은 스스로 미쳐서 시작을 했어요. 연습을 거듭하면서 부모님께 배우지 않은 곡들을 소화해내니까 대견해 하셨어요. 부모님께서 속으로 이것봐라? 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을까요?"

 

김동규 : "어머니는 음악을 들려주시고 이게 누구의 음악이고 특징이 어떻다라는 식으로 가르치지 않았어요. 예를 들면 베토벤의 음악을 틀어놓으시고 설명이 없어요. 그러면 제가 궁금해서 물어볼 수 있게 교육을 하신거죠."

 

김동규(성악가) 과거 성장과정

 

성악가 김동규

 

김동규 : "중학생 때부터 오페라를 좋아했어요. 듣기 싫어도 집안에서는 음악이 계속 들려왔으니까요. 또 어머니 제자들이 부르는 노래도 자연스럽게 들어야 했고, 집에 오페라 관련 책과 자료들이 시대별로 집대성되어서 아주 많이 있었어요."

 

김동규 : "그 당시 부모님의 친구분 집(직업 사업가)에 가보면, 음악 관련 책을 찾아볼 수 없었어요. 전 공짜로 얻은 게 많았죠."

 

 

하지만 김동규 어머니는 아들에게 강제로 성악을 시키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저 음악적인 환경에 아들을 놓아둔 채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김동규 :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이후 박성련은 함께 연습할 수 있는 아파트를 구해 바로 직접 레슨을 시작, 불과 3개월만에 김동규가 연대 성악과에 합격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합니다. 

 

김동규(성악가) 촉망받던 젊은 성악도

 

성악가 김동규

 

김동규는 연세대 재학시절 중앙일보사가 주최했던 중앙 음악 콩쿨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 성악가였습니다. 그런데 김동규는 바리톤인데, 테너가 되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김동규 : "(테너나 바리톤은)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제 성대가 바리톤으로 타고난 거죠.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나 테너를 하려고 하겠죠. 테너가 돈도 많이 벌고 빨리 유명해지니까요."

 

참고로, 성악에서 테너, 바리톤, 소프라노, 메조 소프라노는 각자 맡은 역할이 있습니다. 주로 테너는 착한 주인공 역할을, 바리톤은 주인공에게 반대되는 악당 역할, 소프라노는 착한 여주인공 역할을 메조 소프라노는 자유분방하고 악녀 역할 등, 완전히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렇게 구분이 된다고 합니다. 

 

 

김동규 : "하지만 바리톤이 테너보다 좋은 점이 있어요. 테너보다 노래와 연기의 폭이 넓죠. 또 목소리 때문에 노심초사하면서 살지 않아도 되고요."

 

김동규 : "테너는 누구 앞이건 간에 일단 내질렀을 때 관객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의 무아지경의 소리가 나야 해요. 소리 하나로 승부를 내야 하는 거죠. 반면에 바리톤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로 승부를 내지 않아도 돼요. 주로 캐릭터가 강한 역을 주로 맡기 때문에 비중이 높죠."

 

김동규(성악가) 이탈리아 유학을 떠나

 

성악가 김동규

 

김동규는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로 유학을 같이 떠납니다. 당시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의 만점 입학으로도 유명합니다. 

 

김동규 : "한 선생님 앞에서 노래를 했는데 너는 왜 유학을 왔니? 극장에서 노래해야지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실제로 유학 간지한 달 만에 무대에서 노래를 했어요. 이후 오디션 의뢰가 이어지고 공연도 했고요.

 

김동규 : "혈혈단신으로 떠난 이탈리아에서 왜 힘든 게 없었겠어요. 하지만 난 생활력이 무척 강한 편입니다. 이탈리아 입성 한 달 만에 이탈리아인들 앞에서 이탈리아어로 공연을 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어요. 그 경험이 날 강하게 만들었어요."

 

 

김동규의 재능도 뛰어났지만 그의 노력 역시 대단했다고 합니다. 

 

김동규 : "그렇게 공연을 해서 번 돈으로 학교를 다녔어요. 학교에서도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아서 1년 밖에 안 다녔죠. 저는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선생님들이 묻는 곡마다 미리 연습해간 곡들이었죠.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김동규 : "서양에서 한국인이 인정받으려면 자세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오페라 리허설을 하는 데 굉장히 어색하더라고요. 다른 배우들이 나를 우습게 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외국인이 춘향전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어설픈 흉내로 비치기 싫었죠."

 

김동규 : "또 오페라는 노래만으로 안 되고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손짓 발짓이 자연스러워야 해요. 그래서 생활 자체를 이탈리아식으로 바꿨어요. 한국인을 만나도 이탈리아 식의 제스처를 했어요."

 

김동규 : "무대에서 거리낌없이 행동하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결국 동료들로부터 이탈리아인이 아니면서 가장 이탈리아인답다는 얘기를 들었을 정도에요."

 

김동규는 이런 노력 덕분에 이탈리아로 간지 불과 2년만인 1991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성악 콩쿨인 제 31회 베드리 국제성악콩쿠르 대회에서 1위를 하면서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김동규(성악가) 인종차별과 편견 극복

 

성악가 김동규

 

이후 모든 성악인들이 동경하는 이태리 밀라노의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오디션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통과하여 오페라 바다의 분노를 시작으로 유럽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좀 서글픈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1995년 1월 29일, 원래 김동규가 리골레토 주연으로 라 스킬라 무대에 설 예정이었는데, 극장의 음악 감독 리카르도 무티가 돌연 출연 취소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김동규가 나이 어린 동양인이라는, 인종차별적인 이유때문이었습니다. 

 

 

김동규 : "공연 이틀 전에 리카르도 무티에세서 출연취소 통보가 날아왔어요. 무티의 거절에 가슴이 찢어졌어요."

 

이에 주 이탈리아 한국 대사관이 나섰지만, 무티의 결정을 돌이킬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그 이후 김동규는 스티펠리오의 바리톤 주역 스탕까르 역할로 라 스칼라 무대에 서게 됩니다. 

 

김동규 : "당시 비참한 기분이 들었지만, 우리 춘향전에 서양인이 이도령 역을 맡으면 기분이 어떻겠느냐고 스스로 달랬어요."

 

김동규 : "유럽 생활을 하면 많이 부러운 점이 있어요. 일본인 가수가 오페라에 주연이라도 맡아 무대에 서면 기업이 20만원 짜리 표를 사서 2만원에 팝니다. 극장을 꽉 차게 하려는 의도죠. 그럴 땐 참 속상했어요."

 

김동규(성악가) 콧수염

그리고 김동규의 콧수염은 이탈리아에 있을 때부터 기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김동규 : "이탈리아에 있을 때 영국인 매니저의 조언으로 콧수염을 길렀어요. 저는 주로 왕이나 장군 역할을 맡이 맡는데, 제 얼굴이 동안이어서 너무 앳되게 보였어요."

 

김동규 : "그래서 하루는 수염을 아교로 붙이는 분장을 하고 있었는데 매니저가 그럴 바에는 콧수염을 길러보라고 권하더군요. 지금도 배역을 소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김동규(성악가) 본격적인 유럽 활동

 

성악가 김동규

 

이후 김동규는 유럽 각지에서 오페라 크리스토버 콜롬보, 마법사의 딸, 오텔로, 사랑의 묘약, 일 트로바토레,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주역을 출연했습니다. 

 

 

김동규는 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도니제티의 오페라 린다 디 샤모니로 세계적인 소프라노 에디타 그루베로바와 첫 음반제작을 시작으로 독일 뮌헨에서 오페라 청교도로 그루베로바와 두 번째 음반을 제작했습니다. 

 

이태리 도니로 왕립오페라 극장에서 운명의 힘에 주역 출연하였으며, 또 다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도니젯티의 오페라 로베르토데보레로 세 번째 음반을 제작했습니다. 

 

김동규는 이러한 활발한 연주활동과 화려한 명성을 쌓아가던 중 세계최고의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와 리골레토를 공연하고 다시 라 스칼라 극장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스티펠리오에서 바리톤 주역인 스틴커역을 맡았으며 테너 주역인 호세 카레라스와 알베르토 쿠피도가 함께 열연을 펼쳤고, "새로운 스칼라의 주역"으로 인정되며 본격적인 김동규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김동규는 외국에서 활동 중 국내에서도 수많은 초청으로 1991년 KBS 개관기념 오페라 오스카를 시작으로 안드레아 쉐니에, 일 트로바토레, 메리 위도우,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토스카, 오텔로와 같은 공연으로 국내 오페라에도 끊임없이 그의 영향력을 펼쳤습니다. 

 

한편, 김동규는 유럽 무대에서 인정을 받은 이후 미국의 매니지먼트 사가 스카웃 제안을 했지만 이를 거절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유럽무대에서 활동하기를 원했던 것인데, 하지만 이후 아내와의 이혼으로 그것이 깨지게 됩니다. 

 

김동규(성악가) 음반

 

성악가 김동규

 

김동규 음반으로는 오스트리아의 나이팅게일사와 전속 계약하여 1993년부터 린다 디 샤모니 도니제치, 마리아 디 오랑 도니제티, 청교도 벨리니, 로베르토 데보레 도니제티, 그리고 네덜란드의 아호이 베르덕션과 함께 라 트라비아타 베르디를 발매했습니다. 

 

 

그 이후 1996년에 국내 첫 음반으로 Close to you(그대에게 가까이)를 발매했고, 2001년에는 새로운 크로스오버 앨범인 Detour(우회)를 선보였고,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를 제작하여 발표했습니다. 

 

<김동규 수상 경력>

-1988년 3월 제 14회 중앙음악 콩쿠르 성악부문 1위

-1991년 6월 제 1회 나폴리 사레르노 성악 콩쿠르 1위

-1991년 6월 제 31회 베르디 국제 성악 콩쿠르 1위

-1997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문화관광부)

-1997년 제 24회 한국방송대상 수상

-산업통상부 국가 브랜드 성악부분 2년 연속 1위

-제 14회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 남자주역상

 

김동규(성악가) 방송 활동

 

성악가 김동규

 

출연 방송으로는 MBC 댄싱 위드 더 스타 시즌1, SBS 불타는 청춘,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 SBS 김수미의 밥은 먹고 다니냐, TV조선 백세누리쇼, KBS 1대 100, 더라이프 클래식은 왜그래2, TV조선 내몸을 살리는 기적의습관 등이 있고, 이외에도 2006년 5월 ~2011년 5월 CBS FM 아름다운 당신에게, 2013년 4월~2015년 6월 KBS 해피FM 매일 끄대와...김동규입니다 진행을 맡기도 합니다. 

<김동규 경력 사항>

-이탈리아 라 스칼라극장 한국인 최초 주역가수

-전 강남대학교 음악대학 석좌교수

-전 상명대학교 음악대학 석좌교수

 

김동규(성악가) 결혼 아내(부인) 나이차, 누구?

김동규는 은사인 연세대 황영금 교수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김동규와 아내 두 사람의 나이차는 아내가 1살 연상이었고, 아내 역시 성악가 출신이라고 합니다. 

 

김동규(성악가) 아내 아들 이혼 사유(이유)

 

성악가 김동규

 

둘은 이탈리아로 같이 유학을 떠났고, 후에 김동규는 아들(1995년 2월생)을 한 명 낳습니다. 하지만 공연으로 인한 바쁜 스케줄 탓에 결국 가정을 소홀히 하게 되면서 서로 다투는 일이 잦아졌고, 두 사람은 결국 2000년 이혼을 하고 맙니다. 

 

김동규 : "유럽에서 바쁜 공연 생활로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도 유럽공연 중 어느 고속도로 공중전화 부스에서 들었어요."

 

김동규 : "아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어요. 일이 잘되면 잘될수록 가정에 충실할 수가 없었죠. 둘 사이에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저는 공연을 가야 하고, 아내는 집에 있어야 하니까 서로간에 골이 깊어졌죠."

 

 

김동규 : "유럽 생활 당시에 너무 바빠 연결고리를 찾을 수도 없었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답은...결별이었어요."

 

이후 김동규 전부인(아내)은 아들과 함께 독일에서 살게 되고, 김동규는 아들을 잘 보지 못합니다. 

 

김동규 : "1995년 생이니 이제 다 컸겠죠? 정말 많이 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쪽에서 연락이 안 되니까...언젠가 만날 수 있겠지라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동규(성악가) 귀국 이후 근황

 

성악가 김동규

 

이혼 후 김동규는 유럽 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이후 김동규는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김동규 : "원래 유럽에서 20~30년간 활동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 꿈이 깨졌어요. 세계적인 무대를 누비며 활동을 해도 마음은 늘 공허했어요. 내가 꿈꿔왔던 것이 호텔방 생활이냐 싶기도 하고, 나의 개인적인 삶은 어떻게 되는 건가, 이렇게 늙을 생각을 하니 암담해지더라고요."

 

김동규 : "당시 한국에 초청공연을 자주 오고 또 이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굉장해서 베이스캠프를 한국으로 옮기게 되었어요."

 

 

김동규 : "이혼 후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어 혼자 오피스텔에 살면서 커튼을 쳐놓고 피아노 한 대, 침대 하나 놓고 6개월을 지냈어요. 영화 올드보이에서처럼 독방에서 자장면만 시켜 먹었죠."

 

김동규 : "방 안에 처박혀 생각해 보니 제가 살아오면서 이뤘던 모든 게 허망하기 짝이 없었어요. 모든 게 공허했죠."

 

성악가 김동규

 

이러던 중 김동규에게 지인인 MBC 라디오 골든디스크 진행자 김기덕 국장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크로스오버 뮤직을 해보자고 권합니다. 

 

이에 김동규는 그 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음악 분야이지만, 본인의 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김동규 : "몇 달 동안의 노력 끝에 디투어라는 크로스오버 앨범을 선보이면서 슬럼프에서도 자연스레 벗어날 수 있었어요. 이 랠범에 디투어(우회하다) 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이때가 제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었기 때문이죠."

 

여기에 그 유명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라는 곡도 담기게 되었는데, 해당 곡은 좋은 멜로디와 높은 인기 덕분에 생일 파티, 돌잔치 등에 단골로 사용되는 곡입니다. 

 

김동규는 한국 생활을 하면서 어머니와 십여년을 함께 살게 됩니다. 그리고 재혼에 대한 생각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은 혼자 살고 있네요.

 

이번에 국가가 부른다에 출연하게 되었는데요, 정말 색다르고 귀한 무대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활약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성악가 김동규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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