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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이 3월 26일 SBS 신발벗고 돌싱포맨에 출연합니다. 

 

박항서

 

이날 방송에는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박항서, 김태영, 김남일이 출연합니다. 

 

이중 박항서는 특히 베트남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로, 선수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파라 노하우를 공개했는데요, 이에 김태영과 김남일은 80%는 연출일 것, 우리한텐 안 그러셨잖아요"라고 반박해 현장이 웃음바다가 됩니다. 

 

또한 돌싱포맨이 2002 월드컵이 더 영광이냐, 지금 아내와 결혼이 더 영광이냐고 묻자, 박항서는 김태영과 김남일에게 말을 조심해서 하라며 침착한 지시로 감독다운 재치와 면모를 선보이기도 합니다.

 

이에 박항서 감독 나이 프로필 연봉 아내 아들 근황 등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박항서 감독에 대해 알려진 정보를 모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박항서 감독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종교 학력 

 

박항서

 

박항서 감독은 1957년 10월 1일생으로 올해 나이 66세입니다. 박항서 감독 고향은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이며, 가족으로는 아버지와 아내 최상아와 아들 박찬성(1986년생)이 있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키가 166cm라고 하는데요, 실제 키는 나이가 들면서 더 작아졌는지 164cm인 이수근보다 조금 더 작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박항서 감독 종교는 개신교(성결교회)이며, 학력은 생초초등학교, 생초둥학교, 경신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김보민(아나운서) 나이 프로필 남편 김남일 아들 서우 근황

 

김보민(아나운서) 나이 프로필 남편 김남일 아들 서우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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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 선수 이력

 

박항서

 

박항서 감독은 1977년 제 19회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하는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로 선발, 이어 1978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 대회에서 청소년 대표팀 주장을 맡아 우승했습니다.

 

이후 1979년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B팀인 충무에 선발, 1981년에는 1진인 화랑팀에 선발되어, 같은해 3월 한일 정기전 1경기를 치뤘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또한 1981년 실업 축구단이었던 제일은행 축구단에서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 이후 1984년 럭키금성 황소(현 FC서울)에 창단 멤버로 입단해 1985년 K리그 우승과 1986년 K리그 준우승에 기여한 후 30세 때인 1988 시즌이 끝난 뒤 선수생활을 마감했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당시 은퇴를 빨리 선택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합니다.  

 

박항서 : "내가 30세 때 은퇴를 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결혼을 하거나 30세가 넘으면 은퇴를 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주전을 계속 뛰었으면 했겠지만 그게 아니라 이제 은퇴를 해야할 시기구나 생각해 은퇴를 하게 됐다."

 

박항서 은퇴 이후 이력

박항서 감독은 그렇게 빠른 은퇴 이후 1996년까지 LG 치타스에서 코치로 활동하다가 감독의 사퇴로 감독 대행으로 활약, 이후 1997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옮겨 2000년 2월까지 활동합니다. 

 

또 한편으로 박항서는 1994년 월드컵에는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활약하기도 했는데요, 그러다가 허정무 감독 사퇴 이후 수석코치로, 이어 2000년 12월 한일 정기전에서는 감독 대행 자격으로 경기를 지휘하기도 합니다. 

 

박항서

 

이후 히딩크로의 수석코치로 합류,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해 월드컵 4위의 성과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기도 했고, 이후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팀을 맡으며 생애 처음으로 정식 감독직을 맡았지만 겨우 동메달을 땄다는 이유로 해임됩니다.

 

이후 박감독은 결과에 대한 스트레스로 공황장애 진단을 받기까지 했다고 하는데요, 이후에도 약을 복용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박감독은 이후 포항 스틸러스 코치를 거쳐 전남 드래곤즈에서는 기술고문을 맡다가 2005년 고향 팀인 경남 FC의 창단 감독으로 취임하지만 이후 4위라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구단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납니다.

 

그리고 이후 2007년 12월 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된 허정무의 대체자로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에 부임해 활약하다가 2010년 11월 전남 드래곤즈 감독에서 사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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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그리고 이후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다가 2012년 상주 상무의 감독으로 취임, 이후 팀을 정비해서 1부 리그 승격을 성공시킨 후 상무와의 계약 기간이 끝남으로 상주를 떠나게 됩니다. 

 

박감독은 고향인 산청군으로 돌아가 짧게 고등학생 유소년들을 코칭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내셔널리그 창원시청 축구단의 제 2대 감독으로 취임해 내셔널선수권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여름 이적 시장에서 보강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한계를 드러내며 순위가 급하락하며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박항서 감독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그러던 와중 아내가 동남아는 어떠냐고 물으며 직접 에이전트와 연결해 줬고, 솔직하게 나는 지금 무직이며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자 며칠 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제의가 왔다고 합니다.

 

이에 박항서 감독은 기뻐했지만 한편으로는 외국인 감독들의 무덤 자리라는 소문을 듣고는 잘못 선택했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결국 수락하게 됩니다. 

 

박항서 감독 베트남 감독으로서 활약

 

박항서

 

박항서 감독은 그렇게 2017년 10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과 베트남 U-23 축구 국가대표팀의 겸임 감독으로 공식 취임, 이후 2018년 AFC U-23 챔피언십에서 약체로 평가받던 베트남 U-23 대표팀을 결승에 진출시키는 파란을 일으키면서 베트남 국민들로부터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또한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도 베트남을 56년만에 아시안 게임 축구 4강에 올려놓으며 베트남 축구 영웅으로 떠올랐고, 2018년 AFF 스즈키컵에서도 베트남을 2008년 대회 이후 무려 10년만에 우승으로 이끌며 2018년을 최고의 한해로 만들었습니다. 

 

이어 박감독은 2019년 AFC 아시안컵에서 베트남을 12년만에 아시안컵 8강으로 이끌었으며 2019년 킹스컵에서도 준우승을 이끌어내면서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축구 최강국으로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2019년 11월 3년 재계약을 맺으며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계속 이어갔고, 다음날인 8일에는 아세안 축구 연맹이 선정한 올해의 감독상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이후 2019년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도 베트남에 1959년 대회 이후 60년 만에 통산 2번째 금메달을 선사했고, 이후 2022년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서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첫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이후 중국과의 최종 예선 B조 8차전에서 베트남의 역사적인 월드컵 최종 예선 첫 승리를 이끌어내는 기염을 토했으며 일본과의 최종전 원정 경기에서도 1-1 무승부의 쾌거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U-23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마지막 대회인 2021년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 베트남의 2회 연속 금메달이자 이 대회 전승 무실점 금메달을 이끄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0월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면서 박감독의 임기는 2023년 1월 31일까지로 확정, 이후 2022년 아세안 축구 연맹 챔피언십에서 인도네시아를 꺾고 두 번째 결승에 진출했고, 라이벌 태국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팀을 준우승으로 기끌며 5년간의 감독직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박항서 감독 근황

 

박항서

 

이후 박항서는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고, 그외에도 동남아권의 국가대표팀에서도 감독직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전부 거절했다고 합니다.

 

대신 베트남 유소년 축구 육성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언급하면서 이후의 여정에 대한 힌트를 남겼는데요, 이후 2024년 2월 베트남 3부 리그 소속인 박닌 FC의 고문으로 부임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태국과의 월드컵 예선 2연전을 앞두고 이 경기를 임시로 지휘할 사령탑으로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고, 본인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황선홍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임시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결국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박항서 감독 개인 수상 기록>

-1985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13년 K리그 올해의 감독상 수상

-2017년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최고 감독상 수상

-2019년 AFF 올해의 감독상 수상

-2002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수훈

-2018년 베트남 3급 노동 훈장 수훈

-2018년 베트남 우호 훈장 수훈

-2020년 베트남 2급 노동 훈장 수훈

 

박항서 감독 수입 연봉

 

박항서

 

박항서 감독의 연봉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박항서 감독은 2019년 베트남 축구협회와 재계약 전 매달 세후 2만 달러(약 2300만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이후 재계약을 하면서 역대 최고 대우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구체적인 연봉액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베트남 현지 언론은 약 96달러(약 11억 1000만원)로 추산했습니다.

 

재계약을 하면서 매달 세후 6만 달러(6940만원)를 받기로 했는데, 여기에 개인 주택과 자동차, 항공비 등을 포함하면 실질적으로 박 감독이 받는 급여는 최대 월 8만 달러(9260만원)가 된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는 태국 국가 대표팀을 이끄는 니시노 아키라 감독의 연봉(94만 8000달러)과 비슷하다는 게 현지 매체의 설명이었는데요, 하지만 박감독의 연봉이 공개될 경우 한국과 베트남에서 상반된 반응이 나올 것을 우려해 비공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다만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 역사상 최고 대우라는 정도만 알려졌는데요, 이후 지난해(2021년) 기준 박감독의 연봉은 현지에서 매월 약 5만달러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와 관련 베트남 몇몇 주요 매체는 당소 비밀이었던 월급 추정치까지 공개하며 "한국에서 이 월급으로 박 감독을 데려갈 곳이 많다"고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박항서 감독 결혼 아내(부인) 최상아 나이차 직업, 누구?

 

박항서-아내

 

박항서 감독은 아내(부인) 최상아 씨와 1987년 5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박항서 아내 최상아 씨의 나이 직업 등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 없습니다.

 

다만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협회로부터 제의를 받고 고민할 때 아내 최상아씨가 적극 권유해 박 감독을 베트남으로 갈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내 최상아 씨는 당시 60세가 되는 남편의 열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베트남 감독직을 권했다고 하는데요, 한 보도에 따르면 최상아씨는 "해외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았나.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라며 그를 설득했다고 합니다. 

 

박항서 감독 : "아내가 동남아 진출을 제안했다. 당시 한국에선 하향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도전해보자는 심정으로 베트남으로 떠났다."

 

박항서 감독 아들 어머니 별세 근황

박항서 감독과 아내 최상아 씨 사이에 자녀로는 아들 박찬성이 있는데요, 37세 정도가 되었겠네요. 아들 박찬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공개된 바는 없는데요, 다만, 한 인터뷰에서 아들에 대해 언급해 눈길을 끈 바 있습니다. 

 

박항서 : "(그 말 하고 나서) 우리 아들한테 혼났습니다. 왜 쓸데없는 이야기하냐고..."

 

한편, 박항서 감독의 어머니 백순정 여사가 100세를 맞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는데요, 이에 베트남 주석이 박항서 어머니를 위한 선물을 전했다고 합니다.

 

박항서 감독은 한국 귀국 전, 베트남 주석궁에 초대되기도 했는데요, 이에 대해 그는 "어떻게 아시고 어머니 생신 선물로 액자 표구를 주셨다"라고 전해 놀라움을 안기기도 했습니다.

 

박감독의 어머니 백순정 여사는 지난(2024) 2월3일 향년 102세로 별세했습니다. 

 

참고로, 경남 사천시 축동면 출신인 고 백 여사는 박 감독의 고향(경남 산청군)에서 축동띠(축동댁)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경남의 명문사학 진주여고를 졸업한 신여성이었고, 경찰 출신인 남편 고 박승록 선생이 한국전쟁 당시 밀양전투에서 부상을 당새 공직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면서 백 여사가 20대 후반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일터로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약방, 식당, 소금 도매상 등 여러 일을 하면서 아들들을 서울로 유학 보내 대학 공부까지 가르쳤고 막내 박 감독은 국가 대표 축구선수로 키워내 산청 고향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백 여사를 여장부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번에 신발벗고 돌싱포맨에 출연하게 된 박항서 감독인데요, 앞으로도 멋진 활약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박항서 감독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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