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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장미화가 7월 2일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합니다. 

 

가수-장미화

 

한국 최초 영성 록 밴드 레이디 버드 리드 싱어로 미8군의 명물이었던 장미화는 이날 생사를 함께한 전우들과 만납니다. 특히 과거 한국 최초의 록 사운드 그룹 키보이스 멤버 윤향가의 등장이 눈길을 끕니다. 

 

 

이들은 당시 "목숨을 걸겠다"는 서약서와 함께 전쟁통을 돌며 노래를 하고, 포화 속에서 위험천만하게 살아남으며 깊은 우정을 쌓았다고 합니다. 

 

또한 안녕하세요, 웃으면서 말해요, 어떻게 말할까 등 많은 히트곡을 냈던 장미화가 결혼 발표 후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사연도 공개됩니다. 

 

아들이 세 살 무렵 이혼을 결심한 그녀는 "남편에게서 아들을 데리고 오는 조건으로 빚 100억 원 가량을 홀로 짊어져야 했다"고 전해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장미화는 "싱글맘에 빚까지 떠안으며 홀어머니까지 모셔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일이든 돈이 된다면 해야 했다. 아들은 내가 살아 올 수 있는 희망이었다. 다시 태어나면 가수 안 한다. 남편하고 아기낳고 보통 가정에서 살고 싶다."고 바람을 전합니다. 

 

이에 그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속 깊은 아들은 "매년 어머니의 생신만큼은 거하게 챙긴다."며 감동의 생일파티를 준비합니다. 


장미화(가수) 프로필 본명 나이 고향 가족 혈액형 종교 학력 소속사

 

가수-장미화

 

가수 장미화의 본명은 김순애입니다. 장미화 나이는 1946년 7월 13일생으로 올해 나이 78세입니다. 장미화 고향은 경기도 남양주시이며, 현재 거주지도 같은 곳이라고 합니다.

 

가족으로는 7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언니 6명 모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고 하며, 어머니 역시 미국 2001년 9월 11일 테러사고 다음 날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남편 금태선과는 이혼 후 사별해 현재는 아들 김형준이 있습니다.

 

장미화는 혈액형은 B형이라고 하고요, 종교는 불교이며, 현재 소속사는 산마김치 대표이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외에 장미화 키 학력 등의 정보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장미화(가수) 데뷔 앨범 활동

 

가수-장미화

 

가수-장미화

 

장미화는 1965년 서울중앙방송(지금의 KBS 한국방송공사) 주최 가수 발굴 노래자랑 탑 싱어 선발대회로 데뷔, 이후 같은해 신중현이 이끄는 밴드 ADD4가 낸 앨범에서 2곡의 보컬과 1집 앨범 그 누가 뭐래도를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합니다. 

 

이후 장미화는 안녕하세요, 애상, 어떻게 말할까, 내 마음은 풍선, 내 인생 바람에 실어, 서풍이 부는 날, 봄이오면 등의 히트곡을 남깁니다. 이중 대표곡 안녕하세요는 현재도 거의 대부분의 대중들이 알고 있는 명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미화는 또한 1976년 우리나 1호 걸그룹 레이디버드(5명 구성) 멤버로, 동남아, 캐나다, 미국 등 외국에 진출하기도 하는 등 1990년대 극초반까지 가수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갑니다.

 

그러다가 이후 장미화는 현재까지 방송과 산마식품(김포시 통진읍 고정리 위치) 대표이사 등 가수이자 영화배우이자 방송인과 기업가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장미화는 전성기 때는 서구적인 외모와 몸매로 주목받기도 했는데요, 2023년 기준 80세가 가까운 나이에도 젊은 시절에 비해 파워풀하고 허스키한 가창력과 성량이 거의 변하지 않았으며 젊어 보이는 외모로 가수, 방송인 등 다방면에서 활동 중에 있습니다. 

 

<장미화 수상 경력>

-2011년 제 6회 대한민국나눔대상 서울특별시장 대상 수상

-2012년 불자대상

 

장미화(가수) 결혼 전남편 김태선 나이(차) 직업, 누구?

 

가수-장미화

 

장미화는 전남편 김태선과 1978년 7월 22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장미화와 전남편 김태선 두 사람의 나이차는 전남편 김태선이 1살 어린 연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전남편 김태선의 직업은 사업가였다고 하는데요, 이후 직업을 바꿔 사진작가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장미화(가수) 전남편 김태선 아들 이혼 이유

 

가수-장미화

 

두 사람은 결혼 후 곧 아들 김형준을 낳게 되는데, 불과 3년 만에 성격차이로 이혼하게 됩니다. 이유는 가수 생활을 은퇴한 장미화와 남편의 성격이 보수적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장미화 : "서로가 연애할 때는 몰랐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까 속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 결혼과 동시에 연예활동을 접었는데, 그러다보니 자유로웠던 몸이 어딘가 갇히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그게 좋았는데 한 1,2년 아기 낳고 살다 보니까 이상해졌다. 그게 편하지 않았다"

 

결혼 후 초기에 장미화는 전업주부로 사는 것이 좋았지만, 이후 다시 예전의 활동했던 시절이 그리워져 돌아가고 싶었던 것인데요, 남편이 이를 반대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둘 사이를 갈라놓고, 여기에 더해 전남편의 사업 실패와 빚으로 인해 둘은 결국 결혼 4년 만인 1982년 경 이혼을 하고 맙니다. 그리고 아들의 양육권을 갖기 위해 전남편의 빚을 떠안게 됩니다. 

 

장미화 : "전 남편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 사업에 너무 광적이었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시키다 보니까 빚더미에 앉았다. 그래서 이혼하고 빚을 청산한 뒤 재결합을 이야기했더니 전남편이 내가 이혼했으면 했지 절대 그렇게는 못 산다. 내 자존심이 허락을 못 한다라고 했다."

 

장미화 : "전 남편 얘기를 듣고 욕을 확 했다. 그러다 결국 헤어졌다. 결혼 생활 4년이지만 3살 아들이 있었다. 아들을 데리고 헤어졌는데 어느 날 공연하고 집에 오니 아들이 없어졌더라."

 

장미화 : "시가에서 장손이라고 데려간 거다. 아들을 뺏기고 저와 어머니의 가슴은 새카맣게 탔다. 그래서 전 남편의 빚을 제가 다 안고 아이를 데려왔다."

 

장미화 : "전 남편의 빚이 100억 정도 됐다. 1993년도부터 제가 갚기 시작했다. 집도 주고 오피스텔도 주고 땅도 줬다. 노래 관둘 때까지 30년 부른 값을 다 털어줬는데도 부족했다. 빚을 안고 40대 때 아들을 데려왔다."

 

장미화(가수) 이혼 후 아들을 위해 

 

가수-장미화

 

가수-장미화

 

이후 장미화는 아들 교육을 위해 재혼하지 않고 혼자 아들을 키우며 살게 되는데, 아들의 양육권을 갖기 위해 전남편의 빚을 떠안아야 했기에 가요계 복귀 이후 생계형 가수가 됩니다. 

 

장미화 : "시집을 가자니 아들이 다른 사람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 그 사람과 평생 사는 걸 누가 보장하나. 차라리 혼자 데리고 사는 것이 가정교육에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계형 가수로 활동을 이어가던 장미화는 1990년대 초반에 한국의 거의 모든 가수들을 대상을 사기를 쳤던 가수 A씨에게 사기를 당하게 됩니다.

 

 

김형자 : "가수 A씨 사건은 유명해서 잘 아실 거다. 20명 정도의 피해자가 있었다. 장미화 씨는 집한 채를 날릴 정도였다. 그 가수 A의 운전기사한테도 전셋돈 2천만원을 빌리기도 했다더라."

 

김형자 : "25년 전 그 사람이 해먹은 돈이 몇 십억 될거다. 하지만 가수 A는 칠레와 캐나다로 도피해 잘 살고 있다더라."

 

결국 이런 사기사건과 더불어 빚보증으로 장미화는 전재산 12억원을 모두 날리고 10년 가까이 빈털털이로 생활하게 되면서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장미화 :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 이혼 후 아이들 공부에 노모까지 모셔야하는 상황이었다. 야간 업소에서 일할 당시에 손님에게 욕설을 들으면 나도 같이 당당히 맞받아쳤다."

 

장미화 : "그러나 집에 오면 눈물이 날 정도로 슬펐다. 아이는 외국에 가 있고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혼자 있으니까 내가 왜 살아야 하나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

 

장미화 : "힘겨운 시절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기로 결심했다. 자식을 생각하며 재기를 결심했다."

 

장미화(가수) 재기 후 빚 청산, 사업

 

가수-장미화

 

결국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재기의 의지를 불태운 장미화는 야간업소를 뛰어서 빚을 20년 동안 거의 다 갚고, 사업(산마김치)까지 일으킵니다. 

 

장미화 : "그 후 일년 동안 하루에 밤업소 7군데를 뛰면서 일했어요. 그렇게 번 돈으로 빚을 갚았죠. 남들 다 쉬는 일요일에 나가서 노래를 부를 때면 서글픈 생각이 들더라고요."

 

장미화 : "지금 빚은 거의 다 갚았지만, 그 일을 통해서 많은 걸 깨달았어요. 저를 배신한 사람들, 저에게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이 모두 스승이 된 거예요."

 

 

장미화 :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다시 일어서야 했거든요. 지금은 고맙게 생각해요. 그때 그런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장미화(가수) 전남편과 친구처럼 지내다

 

가수-장미화

 

장미화는 그렇게 전남편 김태선과도 이혼 후 처음에는 적대감을 갖고 대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혼 이후 십년이 지난 후에는 그를 용서하게 됩니다.

 

장미화 : "너무 일찍 이혼해 아들이 아버지와 사는 기분을 모른다. 이후 아들을 위해 자꾸 만나게 되더라. 그리고 아들과 전 남편도 가까워지게 됐다. 집에는 각자 가지지만 만났을 때는 가족 같았다."

 

장미화 : "세월이 흘러 이혼한 남편과 친구가 됐다. 이혼 후 전 남편 욕을 많이 했다. 전 남편 탓을 많이 하고 다녔다. 신안생활을 하면서 내 자신을 내려놓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장미화 : "10년 동안 나쁜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그 이후에는 남편이 사업을 시작할 때 노래도 부르러 가고 술도 함께 마셨다. 내가 디너쇼 할 때 남편이 친구들에게 티켓도 팔아주며 친구처럼 지낸다."

 

장미화 : "만나서 술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고 서로 고민도 털어놓지요. 친구들은 자존심도 없냐?고 하는데 이혼한 것이 남편의 탓만은 아니잖아요."

 

장미화 : "살다 보면 서로가 안 맞을 수도 있는 일이고, 제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이 또 우리네 인생이 아니겠어요. 좋은 게 좋은 거죠. 나이가 들수록 사람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너그러워질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것 같아요."

 

 

장미화 : "어느 날 그 사람이 어떤 여자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 사람한테 나를 우리 애 엄마야라고 소개하더라. 그러면서 그 여자에게 이 사람은 지금 나랑 같이 사는 사람이야라고 했다."

 

장미화 : "그때 속으로 나이 60 어디로 먹었니라고 생각했지만 친구니까 그냥 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분이 울면서 내게 전화를 하더라. 언니 나 너무 속상해. 오빠를 많이 사랑하는데 오빠가 나더라 좋은 사람 찾아가래. 언니가 얘기 잘 해줘라고 하더라."

 

가수-장미화

 

장미화 : "내가 그 순간에는 다른 게 생각이 안 나고 같은 여자로서의 동질감만 느꼈다. 그래서 술을 먹다가 전 남편에게 훈계를 하고 둘이 다시 만나게 해줬다."

 

장미화 : "나중에 동생들이 언니 간, 쓸개 다 어디다 버리고 다니냐고 하더라. 그 사람보다 내 자신을 위한 거다. 내 마음을 비우면 편안해지지 않을까. 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전남편과 10년을 친구처럼 지냈다."

 

강부자 : "장미화 전 남편이 장미화가 모친상을 당했을 때도 앞장서서 도왔다. 내가 장미화 전 남편을 보면 엑스사위 왔네라고 말한다."

 

장미화 : "(전남편이) 물건을 하나 사줘도 굉장히 통큰 사람이었다. 프러포즈도 멋있게 했다. 세월이 지나 생각해보니 서로에게 잘잘못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세월이 지나 장미화는 서로에게 잘못한 것을 깨닫게 된 것인데요, 이는 전남편 김태선도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남편은 이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장미화 :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그때 무엇을 느꼈냐면 내가 조금 더 이해하고, 품어주고, 참고 살았더라면 저렇게 빨리 가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었다. 막상 (전 남편이) 없어지니까 가슴이 아팠던 것이다."

 

장미화(가수) 아들 김형준 직업 근황

 

가수-장미화-아들

 

장미화 아들 김형준은 이미 스포츠 스타들 사이에서 실력파로 소문난 유명 사진작가로 활약하고 있는데요, 장미화는 과거 여러 방송을 통해 공개한 바 있습니다.

 

한 방송에서 장미화는 아들의 유학 중 지인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줬다 사기를 당했던 일을 꺼내며, "아들에게 그냥 유학 공부를 중단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말 별 일을 다했던 거 같다"라고 힘들었던 당시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아들 김형준은 "나도 외로웠지만 꿋꿋이 잘 살았다. 어머니 또한 지금까지 잘해왔고 존경스럽다. 좋은 아내 만나서 손주 안겨주고 싶다. 앞으로도 화이팅 하세요"라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전했습니다. 

 

또한 아들 김형준은 이후 한 방송(JTBC 어머님이 누구니)에 출연해 어머니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듯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을 뽐내기도 했습니다. 

 

 

장미화는 현재 사업 뿐만 아니라 좋은 아침, 기분 좋은 날, 동치미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가수로서도 가요무대 등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미화는 아직도 연륜이 쌓일대로 쌓인 베테랑 가수임이도 한창 활동하는 가수들 못지 않게 자리관리를 하고 무대에 설 준비를 하곤 한다고 합니다.

 

장미화 : "저는 목소리가 안 나오는 순간까지 노래할 거예요. 불러주는 사람이 있는 한 제 노래를 듣고 저 여자 아직 안 죽었다, 목소리가 쩌렁쩌렁 괜찮네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게 더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거죠"

 

이번에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게 된 가수 장미화인데요,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이어가는 모습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가수 장미화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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