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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선수 출신 김재엽이 4월 7일 TV조선 국가가 부른다에 출연해 관심을 모읍니다. 

 

유도-김재엽

 

이날 방송(국가가 부른다)에서는 유도 선수 출신 김재엽이 등장, 직접 무대에 올라 노래 실력을 선보이는데요, 그가 부르는 노래는 태클을 걸지마입니다. 

 

이날 방송으로 김재엽 나이 프로필 결혼 가족 근황 등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전 유도 선수 김재엽에 대해 알려진 정보를 모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김재엽(유도) 나이 고향 가족 키 학력

 

유도-김재엽

 

전 유도선수 김재엽은 1963년 5월 17일생으로 올해 나이 61세입니다. 주민등록상 생일은 1964년생이지만, 호적에는 1963년생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1963년생인 이만기와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재엽 고향은 경상북도 대구시 남구 대명동이며, 가족으로는 아버지 김경윤과 아들 김관우와 딸이 있습니다. 참고로, 김재엽의 아버지 김경윤씨는 전직 복싱 선수 출신이고, 아들은 과거 청소년 대표 축구 선수, 딸은 뭉쳐야 찬다 경기에 응원을 온 적이 있습니다. 

 

김재엽은 키 163cm에 몸무게는 60kg이라고 하고요, 김재엽 종교는 불교이며, 학력은 대구남산초등학교, 대구중학교, 대구계성고등학교, 계명대학교 상업교육학 학사, 국민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석사, 경기대학교 대학원 경호안전학 박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재엽(유도) 과거 

 

유도-김재엽

 

김재엽은 전직 복싱 선수 출신으로 복싱을 즐기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운동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대구 남산초 2학년이던 1972년 축구를 시작, 예산 문제로 축구부가 해체하면서 1974년 유도로 방향을 틀었지만, 대구중앙중 재학 시절까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당시 그는 싸움까지 잘해 학교 선배들과 어울려 깡패 짓을 일삼았다고 하는데요, 그는 그렇게 고등확교 1학년 때까지 방황을 하다가 스스로 목을 매려했던 어머니로부터 큰 충격을 받고, 방황하던 생활을 그만두고 다시 유도에 전념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재엽 : "중학교 때까지 실력이 부족했고, 성적은 좋지 않았다. 유도 기량이 뛰어난 친구의 덤으로 대구계성고에 입학했다. 그래서 방황하곤 했다. 유도를 그만둘 생각도 했다. 그러다 고교 2학년이 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이러다간 죽도 밥도 다 안 된다는 절박함이랄까."

 

김재엽은 당시 악바리로 불렸다고 하는데요, 훈령량이 많고, 매트에 오르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얻은 별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의 기량은 나날이 발전했고, 그는 기피 대상 1호가 됩니다. 

 

김재엽(유도) 선수 이력

 

유도-김재엽

 

김재엽은 1982년 6월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청소년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유도 최초로 금메달을 수상, 이 시절 100연승의 대기록을 세워 주위를 놀라게 합니다. 

 

김재엽 : "다른 사람이 잘 때도 땀을 흘렸다. 하루 평균 4~5시간씩 더 훈련했다. 피같은 땀을 흘린 덕분에 고교 2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국내대회에서 100연승 이상을 거뒀고, 3학년 말엔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했다."

 

 

당시엔 고교생의 대표 선발전 참가가 허용되지 않았지만 100연승을 돌파한 괴력의 소유자를 그냥 둘 순 없었습니다. 그리고 선발전에서도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김재엽은 그렇게 1983년 계명대학교 1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태릉선수촌에 입촌, 이후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대회에서 모두 19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1983년 마야궤스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 금메달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은메달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7년 서독 에센 세계선수권 금메달

-1988년 서울 올림픽 금메달(그랜드 슬램 달성)

 

이중 서울올림픽이 마지막 금메달이었기에 그만큼 더 애착을 두고 있다고 하는데요, LA올림픽 결승전에서 패한 뒤 4년간 앞만 보고 달렸던 김재엽은 당시 국제무대를 휩쓸었지만, 정작 올림픽 금메달이 없었기에 압박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컸다고 합니다. 

 

김재엽 : "반드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었고, 서울올림픽에서 정상에 오른 뒤 은퇴하겠다고 공연했다. 그래서 매일매일 혹독한 훈련을 자청했고 잘 견뎌냈다."

 

김재엽 :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마지막 금메달을 손에 쥐었다. 모든 선수가 정상에서 은퇴하길 바란다. 난 꿈을 이뤘다. 당시 코칭스태프, 동료, 선후배들 덕분이었다."

 

김재엽(유도) 은퇴 이후 시련

 

유도-김재엽

 

김재엽은 그렇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은퇴했습니다. 그런데 시련이 이어졌습니다. 

 

 

김재엽은 은퇴 이후 한 실업팀의 코치로 발탁되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코치로 참가하기도 했고, 실업팀 감독에 오르며 유도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당시 유도계에 만연해 있던 파벌 분쟁으로 인해 1996년 유도평가전 판정 시비에 휘말리면서 유도계에서 퇴출을 당한 것입니다.  

 

당시 한국마사회 코치였던 김재엽은 76kg급에서 제자 윤동식이 조인철에게 판정패하자 항의했고, 한 달 후 대한유도회로부터 유도계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연금 중단 징계 처분을 받았습니다. 

 

김재엽 : "당시 학연에 따른 편파 판정으로 제자가 불이익을 받았고 재판까지 이어졌다. 나 역시 유도계의 주로 학교를 나오지 않았기에 더는 발을 붙일 수가 없었다. 새로운 직장을 찾는 곳마다 압력이 들어왔다. 그렇게 유도와 멀어졌다."

 

김재엽(유도) 학업에 몰두, 사업 까지

 

유도-김재엽

 

결국 김재엽은 현장에서 물러나 학업에 몰두하게 됩니다. 현역 시절에도 공부를 즐겼고 은퇴한 뒤 교수가 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은퇴 직후인 1989년 국민대 대학원 체육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고, 지도자로 활동하던 1993년부터 대학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ㅈ하지만 임용은 매번 무산됐습니다. 유도계는 주류에 저항한 그를 가만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유도계의 압력 때문에 그는 팀, 학교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진로가 막히자 김재엽은 사업에 손을 댑니다. 그런데 사회는 냉혹했습니다. 운동선수, 지도자, 그리고 강사 경력은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터졌고, 사기까지 당하게 됩니다. 

 

김재엽(유도) 사업 실패와 이혼으로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모두 잃었고 이혼까지 하면서 그의 삶은 뿌리째 흔들렸습니다. 이후 그는 두 아이와 어머니를 데리고 쪽방을 전전하게 되었고, 김재엽은 대인기피증이 생겨 노숙생활을 하면서 점차 삶의 의욕을 잃어가다 결국 극단적으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김재엽 :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깨달은 시기였다. 정말 막막했다. 자해와 자살시도까지 할 정도였으니, 게다가 언론에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재엽이 망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대인기피증이 생겨 사람을 피했다. 당시엔 대한민국이 싫었다."

 

김재엽 : "세계 정상에 올랐지만, 나는 너무 약한 존재라는 걸 뼈져리게 느꼈다. 하지만 내겐 가족이 있고, 가족은 밑바닥에서 날 일으켜 세웠다."

 

특히 죽음의 문턱까지 한없이 추락하던 김재엽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였다고 합니다.

 

김재엽(유도) 가족, 어머니의 도움으로 

 

유도-김재엽

 

김재엽 : "어머니가 더 이상 금메달리스트 김재엽이 아니다고 다그치며 삶의 의지를 심어줬고, 늘 곁을 지키며 물심양면으로 힘써 주신 덕분에 제 2의 인생을 살 수 있었다" 

 

김재엽 : "아이들이 어렸기에 내가 키워야 했다.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정말 독한 마음으로 온갖 일을 다 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힘든 일을 많이 겪었는데도 너무나 잘 컸다. 정말 고맙다."

 

 

그극 하루 24시간을 쪼개 쓰면서 잡생각을 털어냈다고 합니다. 성실한 자세를 되찾았고, 건실한 가장으로 돌아오자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김재엽은 2004년 동서울대 스포츠학부 강의를 맡았고, 2006년 교수로 임용됐습니다. 교수 임용 뒤에도 학업에 열중했고, 2009년엔 경기대 대학원에서 경호안전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김재엽 : "다시 일어서는 방법은 공부뿐이었다. 지식이 풍부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매트에서처럼 죽기 살기로 덤볐다. 악바리 투혼을 매트가 아닌 책에 쏟아부었다."

 

김재엽(유도) 근황과 후배들을 위한 조언

김재엽은 현재 동서울대 스포츠학부 경호스포츠학과에서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유도, 이종격투기, 사격, 수상스포츠는 물론 취업창업 진로지도 과목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취업창업 지도에 각별한 공을 들인다고 합니다.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쳤던 뼈저린 경험은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래서 운동선수들에게 공부를 강조한다고 합니다. 

 

엘리트 선수들은 은퇴한 뒤 선택지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로 선발되면 다행이고 그 밖엔 할 일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김재엽 : "간혹 일반인들이 운동선수가 무슨 공부야라고 말하곤 한다. 운동 선수들은 무식하다는 편견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운동선수 중엔 머리가 좋은 사람이 많다."

 

김재엽 : "사실 머리가 나쁘면 운동을 잘할 수 없다. 운동에 들인 노력만큼 공부에 투자하면 다 잘 될 수 있다.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으라고 권유한다."

 

김재엽(유도) 정수라

 

유도-김재엽

 

김재엽은 과거 사석에서 15년간 가슴앓이를 했던 가수 정수라에 대한 짝사랑을 고백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김재엽의 정수라 짝사랑이 시작된 것은 지난 1986년이라고 합니다. 

 

 

김재엽은 같은 CF에 출연하면서 친분을 맺은 가수 전영록이 서울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는 선수들 격려 공연차 태릉선수촌에 함께 온 정수라를 동갑내기이니 잘해보라 며 그에게 소개시켜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김재엽은 정수라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참한 외모와 차분한 성격이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당시 그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서울올림픽 때 금메달을 따는 데 정수라가 큰 힘이 되었다고 털어 놓기도 했는데요, 그로부터 2년이 흘러 서울올림픽이 끝난 직후 롯데호텔에서 메달리스트를 위한 파티가 열렸을 때 사회자가 정수라에게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누구냐고 묻자 김재엽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재엽은 이 말을 듣고 기대감을 잔뜩 가졌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그는 고백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김재엽은 우연히 정수라가 김재엽이 다니는 골프클럽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때 김재엽은 정수라에게 "15년째 사랑한다"는 본인의 마음을 직접 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수라는 웃기만 했다고 합니다. 이후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하네요.

김재엽 : "이성 친구로 가수 정수라 씨가 있다. 태릉 선수촌에 있던 시절 친구 전영록의 소개로 만났다. 인연으로 이성 친구지만, 남자로 보이지도 여자로 보지도 않는다."

 

김재엽 : "당시 20대 초반이었으니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지금도 같이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성 친구라도 힘든 이야기를 해도 받아주고 참 좋다. 근데도 잔소리를 한다. 그래서 동성 친구를 좋아한다. 나도 여자로 안 보이고, 그도 저를 남자로 안 본다."

 

김재엽(유도) 결혼 전부인(아내) 이혼 아들 딸 재혼 생각

 

유도-김재엽

 

김재엽은 1989년 26살의 나이에 전부인(아내) 김경순과 결혼식을 올립니다. 이후 김재엽은 아들과 딸을 한 명 씩 낳았지만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로 인해 결국 결혼 9년 만인 1998년 이혼을 하고 맙니다.

 

 

이후 김재엽은 한 방송(KBS 아침마당)에서 연애, 재혼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습니다.

 

김재엽 : "아이들이 어릴 때 아내와 헤어졌다. 당시 아이들이 큰 상처를 받았고, 커가면서 내 눈치를 많이 봤다. 아이들에게 준 상처가 평생 한이 됐다. 엄마의 손이 가장 필요할 시기였는데, 내가 죄인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연애, 재혼 생각이 없다"

 

김재엽 딸 김지민 씨는 아버지 김재엽이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왔다고 하는데요, 김재엽 딸 김지민 씨는 아버지 김재엽에 대해 "혼자 가정을 책임져야 하니까. 축 쳐진 어깨를 보면 안쓰럽고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제 삶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한테는 1순위인 것 같다. 아버지를 빼고는 삶을 생각할 수도 없다"고 덧붙이며 김재엽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나타냈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재혼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데요, 어머니는 그가 재혼하길 바라신다고 하네요. 

 

김재엽 : "지금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어머니는 여자를 데리고 오라고 하신다. 아직 어머니가 청소하시고 빨래하고 밥해주시고 살림을 하시니까 저는 미안하다. 황혼 재혼이 금메달 따는 것보다 더 힘들 것 같다. 금메달 따는 것보다 재혼이 더 어렵다. 조건이 더 복잡하다."

 

김재엽(유도)과 안희정 나이(차) 근황

 

유도-김재엽-안희정

 

한편, 김재엽은 2020년 안정환의 사촌누나이자 당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보이스트롯)으로 이름을 알린 23년차 재즈가수 안희정과 공개 소개팅이 주선돼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두 사람을 주선한 것은 다름 아닌 안희정의 딸이었습니다. 

 

 

안희정 딸 장윤영 : "내가 소개팅 주선자다. 이혼으로 오랫동안 엄마가 홀로 지냈다. 문득 혼자 계신 모습을 보니 외로워 보였다. 엄마가 이런저런 일을 겪으니 새로운 사람에게 선을 그었다. 내가 딸로서 채우지 모하는 것을 채워주고 싶었다."

 

장윤영 : "엄마가 오디션에서 탈락하셨을 때 김재엽씨도 탈락하셨는데, 자기 일처럼 아쉬워하시더라. 엄마의 찐팬이자 남사친으로 옆에 계셔주셨으면 좋겠다."

 

김재엽(1963년생)과 안희정(1965년생)은 2살 차이가 난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이루어지진 않았습니다. 이후 김재엽은 현재까지 재혼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재엽은 JTBC 예능 프로그램인 뭉쳐야 산다의 축구팀 어쩌다 FC에 입단을 신청했으며 조기축구 30년 경력자 답게 자신의 실력을 뽐냈습니다. 그리고 53회 예고에서 정식으로 입단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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