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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감독이 2월 17일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 출연합니다. 

 

지난해 출연 이후 자주 등장해 근황을 알리고 있는 이장호 감독인데요, 이에 이장호 감독 나이 프로필 아내 자녀 근황 등 관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장호 감독에 대해 알려진 정보를 모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장호 감독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학력 

 

이장호-감독

 

이장호 감독은 1945년 5월 15일생으로 올해 나이 78세입니다. 이장호 감독 고향은 경기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동)이며, 가족으로는 남동생 이영호와 아내 정은영과 아들 이슬기가 있습니다.

 

참고로, 남동생은 이장호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배우 이영호이고, 매제 중 하나가 정치인 유인태로 청와대 정무서석과 3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국회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합니다. 

 

이장호 감독은 키가 176cm라고 하고요, 학력은 덕수초등학교,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대학은 홍익대학교 건축미술학과를 중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장호 감독 집안 아버지 과거 

이장호 감독은 명동에 건물을 소유할 정도로 부유했던 할아버지 덕에 유복한 유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명태잡이 선주였던 할아버지는 경성에도 근거지가 있었는데, 명동 기쁜소리사 앞 커다란 명태가게가 할아버지 소유의 빌딩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장호의 어린시절 아버지가 정부 수립 후 공보처 영화과 검열위원으로 일하며 국내 개봉 영화를 모두 봐야 했기에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영화를 보다보니, 집안 여기저기에 영화 필름이 있어 그는 전등에 필름을 비춰보며 그 안의 그림에 흥미를 느꼈다고 합니다. 

 

이장호 : "중앙청 지하에 시사실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가기도 했죠. 근무시간 중에 아이가 출입해도 뭐라는 사람이 없던 목가적인 시절이었어요."

 

참고로, 이장호 아버지의 꿈은 영화배우였다고 합니다. 

 

이장호 : "아버지는 우에노 음악학교에 다녔다고 해요. 윤심덕, 홍난파 등이 졸업한 학교죠. 성악과 학생이었는데 성대 이상으로 수술을 한 뒤로 예술가의 꿈을 접었다고 들었어요."

 

아무튼 이장호는 당시 그런 아버지 덕분에 수입된 영화들을 개봉 전부터 미리 볼 수 있었고 수많은 영화들을 보면서 영화계로 진출할 꿈을 키우게 됩니다. 

 

이장호 감독 영화계 진출 계기

 

이장호-감독

 

이후 이장호는 서울의 명문 중고를 졸업하고 대학은 홍익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대학 입학 이후 공부에 관심은 멀어지고 술집에서 보내는 날이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이에 영화일을 했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신상옥 감독 앞으로 가게 되었는데, 당시 신 감독은 신필름이라는 대형 영화사를 이끌고 있는 한국영화계의 실력자였다고 합니다.

 

 

이장호는 당시 신상옥 감독이 뭘 하고 싶냐?기에 저도 연출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당대의 미남 신상옥 감독의 실물을 보고 주눅이 들어서 얼떨결에 뱉은 말이었다고 합니다.

 

이장호 감독 : "아버지하고 같이 가면서 배우가 다 된 것처럼 생각했는데 신상옥 감독이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하고 얘기하는 신상옥 감독 모습을 보니까 너무 잘생겼더라."

 

이장호 감독 : "거기서 배우를 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게 되더라. 감독님이 나중에 너 영화판에서 뭐 하고 싶냐라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연출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장호 감독은 이후 곧바로 공부를 중단(중퇴)한 채 신필름에 입사해 신필름의 전속 감독이었던 나봉한(배우 나운규씨의 아들) 감독과 김수동 감독, 신상옥 감독의 연출부 등을 거치면서 현장에서 8년을 보내면서 연출을 배우게 됩니다.

 

이장호 감독 : "문제아적 기질도 많고 천둥벌거숭이였다. 잘 모르니까 열심히 뛰어 다녔다. 하루는 녹음할 때 신상옥 감독님이 조정실에 있고 우리는 스튜디오에 있는데 내 눈과 마주치더니 막 웃었다."

 

이장호 감독 : "나중에 조감독한테 물어봤더니 너 누구냐라고 하더라. 4년을 일했는데 그때까지 이름을 몰랐던 거다. 섭섭해서 눈물이 터지더라."

 

그러다가 한때 배우의 꿈도 가졌던 그는 1971년 잠시 신필름을 나와서 민족극단에 입단해 무대에 서기도 하다가 1972년 결혼 후 신필름에 재입사해 1973년 홍콩합작영화 제작팀에 합류, 1년을 홍콩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러면서 합작일이 지지부진하자 그 시간을 틈타 이장호 감독은 열심히 세계적 수준의 영화를 직접 보면서 눈이 뜨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장호 감독 데뷔 작품 활동

그즈음 국내 한 신문에서 그의 친구였던 신예작가 최인호씨가 연재소설 별들의 고향으로 공전의 인기를 끌고 있던 상황에서 이장호 감독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 소설을 스크랩해 보냈다고 합니다.

 

사실 이장호 감독과 최인호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깝게 지낸 죽마고우였고 그러다보니 그는 최인호가 쓴 습작 별들의 고향을 대학노트로 이미 본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이장호 감독은 신문연재가 끝나고 단행본이 출간될 무렵 귀국한 그는 최인호씨를 졸라 영화판권을 따내 결국 1974년 영화 별들의 고향으로 입봉에 성공, 당시 관객 5만명이면 히트였던 시절 한국 영화 사상 가장 많은 46만명을 모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장호-감독

 

이후 이장호 감독은 어제 내린 비(1974), 너 또한 별이 되어(1975),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1976)과 같은 4편의 후속작품을 빠르게 만들었고 별등의 고향으로 조성된 청춘영화의 붐을 이끌어갑니다.

 

하지만 이장호 감독은 이후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3-4년 간 활동정지 된 채 아무런 직업도 갖지 못한 채 집에서 뒹굴며 텔레비전을 보는 낭인 세월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장호 감독은 1980년 해금 후 복귀해 사회적인 소재를 적극 표현, 바람불어 좋은 날을 시작으로 어둠의 자식들, 낮은 데로 임하소서, 바보 선언, 무릎과 무릎 사이, 이장호의 외인구단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흥행시키면서 배창호와 경쟁하는 80년대 대표 감독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이장호 감독은 그 과정에서 한 영화사와 손잡고 어우동을 제작하기 위해 신인을 발굴하던 중 여배우 김보연의 소개로 탤런트 조진원을 만나게 되었는데 조진원은 이후 이 감독의 성을 따 이보희로 이름을 바꾼 뒤 이장호 사단의 핵심적인 여배우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보희는 이장호의 바보선언(1983)에서 가짜 여대생 역으로 유명해졌고, 1984년 무릎과 무릎 사이에 안성기와 출연해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장호-감독

 

그 이후에도 1985년 어우동, 1986년에는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엄지를 맡으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나중에 한 방송에서 이장호 감독은 "아내가 이보희에게 질투한 적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스캔들이 난 상황에서도 이장호 감독은 영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에서 이보희에게 가정부, 간호사, 창녀 등 1인 3역을 맡기는 등의 애정을 보여주기도 했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이장호 감독은 첫번째 아내와 이혼 이후 1989년 재혼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기 들어와서 본인의 매너리즘 문제와 영화의 트랜드가 바뀌고 신예감독과 신예배우들이 들어서면서 세대교체가 되는 와중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1992년에는 당시 엄청난 제작비인 15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가며 러시아와 일본을 오고가며 촬영한 명자 아끼꼬 쏘냐가 망하기도 했고, 1995년에도 감독한 영화 천재 선언이 흥행에 실패하게 되면서 이장호 감독은 결국 영화계를 잠정 은퇴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후 2014년 들어 19년 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고 본인의 20번째 영화인 시선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역시 흥행에 실패하고 맙니다.

 

이후 이장호 감독은 2020년 신한대학교에서 개최한 제 1회 함께하는 NFF 독립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1980년대 대한민국의 영화가 안고 있는 현실과 영화의 간격을 좁히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이장호 감독은 이후 2022년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총감독을 맡고 있는데요, 해당 영화는 2024년 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장호 감독 수상 경력>

-1974년 제 13회 대종상 영화제 신인상 (별들의 고향)

-1975년 제 1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상 (별들의 고향)

-1980년 제 19회 대종상 영화제 감독상 (바람불어 좋은 날)

-1982년 제 21회 대종상 영화제 감독상 (낮은데로 임하소서)

-1987년 제 2회 도쿄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1988년 제 2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특별상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2018년 제 38회 황금촬영상영화제 영화감독부문 공로상

-2019년 제 6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공로상

-2019년 제 3회 신필름예술영화제 공로상

-2021년 제 15회 상록수디지로그월드영화제 영화발전공로상

-2022년 제 27회 춘사국제영화제 공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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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감독 결혼 아내(부인) 자녀 결혼생활

 

이장호-감독

 

이장호 감독은 이미 결혼해 아내와 자녀를 두고 있는데요, 아내와 자녀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방송과 인터뷰를 통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언급된 적은 있습니다. 

 

이장호 감독 : "아내가 이보희에게 질투한 적도 있다."

 

이장호 감독 : "아이 문제로 아내와 싸웠다. 아이를 도덕적으로만 가르치고 그래서 싸움을 하게 되니 아내는 아이 앞에서 큰소리 냈다고 화를 냈다. 보따리 싸들고 나왔다. 집을 나와 사무실에 있는데 그렇게 쾌적하더라."

 

이장호 감독 : "한 달 이상 있었는데, 생일이 돌아왔다. 집사람이 전화와서 생일 어떻게 할거냐고 물어와서 색소폰 동호회 회원들이 있는데 올려면 오라고 했다.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화해하고 같이 집에 들어가게 됐다."

 

이장호 감독 : 아내와 싸우고 삭발까지 했는데, 아내와 집에 들어갈 때는 머리가 굉장히 많이 자라 있더라."

 

최근 속풀이쇼 동치미에도 출연하고 있는 이장호 감독인데요, 이번에 또 출연하게 되었네요. 앞으로도 다양한 방송을 통해 좋은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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