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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수희가 화요일은 밤이 좋아에 출연합니다. 이에 김수희 나이 가족 근황 등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래서 오늘은 가수 김수희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모아 정리해볼까 합니다.
김수희(가수)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종교 학력
가수 김수희 본명은 김희수입니다. 김수희 나이는 김수희는 1953년 4월 26일생으로 올해 70세입니다. 김수희 고향은 경상남도 부산광역시 서구이며, 가족으로는 딸 이순정과 아들 김재훈과 손자 2명이 있습니다. 이중 딸 이순정은 1999년 싱글 앨범 찰떡으로 데뷔한 가수 이선민입니다.
김수희는 키 162cm라고 하고요, 김수희 종교는 천주교이며, 학력은 동신국민학교와 숙명여자중학교 졸업, 이후 숙명여자고등학교를 재학 중 중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수희(가수) 집안 과거 데뷔 계기
부산에서 태어난 김수희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바 별나라라는 동시로 전국어린이 글짓기대회에서 최우수상으로 금배지를 타기도 했었고, 이후 중학교때 서울로 이사온 후에도 중 고시절 줄곧 내성적인 성격으로 문학작가를 꿈꾸며 문학계 등단을 꿈꿨다고 합니다.
김수희는 그런 가운데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려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후 김수희는 고등학교를 중퇴 후 18세 때인 1970년 미 8군 무대에서 가수 첫 데뷔, 1971년 미 8군 무대에서 기타리스트로도 데뷔했으며, 또 1972년에 작곡가와 동시에 작사가로 데뷔하게 됩니다.
데뷔 무렵 김수희는 미 8군 부대 여성밴드인 블랙캣츠로 활동하며 밤무대 가수로 활동해 생계를 꾸려나갔고, 여러 노래들을 작사작곡하기도 합니다.
김수희 : "솔직히 노래를 부른 것은 스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단순히 빵이었을 뿐이었다. 오빠 부부가 이혼을 해서 갈곳이 없어진 조카들을 내가 돌봐야 했다. 그때 큰조카의 중학교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했을 때는 내가 대학에 못갔을 때보다 더 서럽고 가슴이 미어졌다."
당시 김수희는 차비를 아끼기 위하여 무대의상을 입은채로 무교동 맥주홀에서 청계천 맥주홀까지 뛰어다닌 일화는 아주 유명한데요, 당시 김수희 어머니는 포목점을 그만둔 상태였고, 김수희 조카 3명은 아직 어렸기 때문에 김수희가 말 그대로 소녀 가장으로 일했던 것입니다.
김수희(가수) 첫 앨범 발표하며
김수희는 그렇게 약 4년간 밤무대 가수와 동시에 작곡가로 지내다가 1976년에 첫 앨범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해 다시 미 8군 무대로 복귀하여 음악생활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김수희는 뛰어난 작사 작곡 능력으로 나를 두고 아리랑 이라는 노래를 작사, 작곡하여 가수 김훈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전후(1976년)에 김수희는 첫번째 남편 이용호와 결혼하게 됩니다.
김수희 : "양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혼을 했다. 당시에 (가수를 그만두고) 하숙집 아줌마, 파출부, 빵배달 아줌마 등 안해본 일이 없었다. 배가 남산만한 젊은 임산부가 힘들게 빵을 배달하자 동네 아줌마들이 많이 도와주었다."
이후 김수희는 1978년 모 방송국 PD가 어느 유원지에서 애인과 헤어질 때 우연히 들었던 너무합니다에 반해 이 곡을 부른 주인공을 찾으면서 뜨기 시작했고, 슬럼프에 빠져 가수를 포기하고 시나리오작가가 되려고 했던 그녀는 첫앨범 너무합니다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다시 힘을 내게 됩니다.
김수희(가수) 다양한 창법 연구하며
김수희는 가수로 활동을 시작할 무렵에 대한민국의 유명한 명창 박초월에게 남도 창법을 배우는 등 다양한 창법을 연구했다고 하는데요, 뒤늦게 인기를 얻게 되면서 이후 김수희의 가능성을 인정하게 된 음반제작자들은 김수희에게 다음 음반(1982년 멍에) 제작을 제안합니다.
김수희 : "음반 제작가들에게 이미 결혼해서 아기도 있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제작자들은 "처녀라고 속이면 된다."고 했어요. 제 매니저 역시 그랬고요."
김수희는 당시 그동안 힘들었던 모든 것들을 이 노래(멍에)에 감정을 털어놓고 또한 서럽게 꺽어부르는 창법을 도입해 대중들에게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많이 알려지게 됩니다.
김수희(가수) 스캔들
하지만 이 일이 있은 후 김수희 스캔들로 터지게 되었는데요, 미혼인줄 알았던 인기 절정의 여가수에게 남편과 아이가 있다는 의혹이 끈임없이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수희 : "지금이야 아이를 낳고 활동하는 여자 가수도 많지만, 그때만 해도 아기 엄마가, 그것도 신인급이 노래만으로 대중 앞에 나선다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었요."
1982년 그녀가 멍에를 녹음할 당시 그녀는 임신상태 였었고, 딸아이를 출산했지만 매니저는 여가수가 유부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방송활동에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미혼이라고 속이고 멍에를 발표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로서 아이를 숨기고 활동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여 생방송 무대에 딸을 데리고 나가 결혼 사실을 밝혔습니다. 당시 생방송에서 딸을 공개하면서 시청자들은 놀랐고, 언론에서는 대서특필 되기도 했지만 애모의 빅히트로 아이를 둔 엄마 김수희에게 많은 사람들이 용기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김수희(가수) 대마초 사건
그렇게 멍에가 히트하면서 정상급 가수로 성장하게 된 김수희는 1983년 10월 4일 대마초 사건 혐의를 받아 곤혹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검찰은 가수와 탤런트, 개그맨 등이 포함된 17명의 대규모 마약 조직을 검거했다고 밝힙니다.
이중 김수희와 주병진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 일로 인해 김수희는 방송정지를 당하고, 한국연예인협회에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죄로 제명처분을 당합니다.
하지만 김수희를 비롯한 주병진 등은 본인의 범행을 적극 부인하였고, 나중에 이들은 검찰에 의해 장시간 구금된 상태에서 자술서에 서명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주병진 : "검찰 수사를 받을 때 누님이 곧 결혼식을 올리게 되어 있어서, 당황한 나머지 얼떨결에 자인서를 썼어요. 대마초는 만져본 적도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죠."
김수희(가수) 작가로 책 출간, 10대 가수상 수상도
결국 무죄로 판정이 나게 되었고, 검찰은 곧 이들을 기소유예 풀어줍니다. 이에 한국인여예인협회에서 김수희에 대한 제명처분을 철회하고 김수희는 다시 무대에 복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김수희는 그렇게 20일만에 복귀한 뒤에는 작가에도 소질을 보인 바, 1983년에는 처음으로 가요계 현장 소설 '너무합니다'를 집필하여 출간합니다.
그리고 1084년에는 소설 설을 집필하여 출간해 베스트셀러 2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고, 그 해에 잃어버린 정으로 10대 가수상을 수상하여 본격적인 인기 가수 대열에 들어섭니다.
김수희는 주로 자신만의 독특한 창법을 가미한 서정적이고 분위기 있는 노래만 부르다가 1986년에 기존의 노래들과 달리 빠른 템포의 트로트곡인 남행열차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여 현재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김수희(가수) 애모 이후
김수희는 이후 여자 조용필이라는 닉네임으로 명성을 다진 김수희는 1989년에는 일본에 진출하였고, 1991년에 애모를 발표하게 되면서 팝 발라드 음악으로 전향합니다.
특히 이곡은 발표 당시 처음에는 그리 주목받지 않다가 2년 후인 1993년 갑자기 대중들의 많은 요청으로 199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를 주름잡던 김건모,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돌 등의 신인가수들을 제치고 인기를 크게 얻어 KBS 가요대상 대상과 MBC 10대 가수가요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이후 1994년에는 영화계에도 진출하여 영화 애수의 하모니카의 시나리오를 직접 제작하고 영화 감독까지 맡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합니다. 그리고 희프로덕션을 설립해 음반 제작자로도 활동하면서 신신애를 가수로 스카우트하고 무명이었던 편승엽을 유명세를 타게 해주었습니다.
김수희(가수) 유방암 루머
한편, 과거 한동안 김수희가 유방암을 앓았고 필리핀의 심령술사로부터 치료를 받았다는 언론보도가 무척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김수희 : "유방암을 앓은 적이 없었다. (대마초 사건과 이혼 등으로) 여윈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필리핀을 내 요양 은신처로 삼았다. 내가 유방암이 아닌데도, 당시 몇몇 언론들은 판매를 위해 나를 두 번씩이나 그들의 지면에 올려놓았다. 정말 당시 나는 언론 기피증을 앓을 정도였다."
김수희(가수) 첫번째 결혼 남편 이용호 이혼 사유(이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수희는 1976년 전남편(첫번째 남편) 이용호와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딸을 낳았지만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고, 결국 이혼하고 맙니다.
김수희 : "가정생활은 화목하지 못했다. 그 남자(전남편 이용호)는 바람같은 사람이었다. 1년에 한두번씩 집에 들어오는 정도였다. 또한 남편의 좋지 않은 주변환경 때문에 나까지 자주 구설수에 올라갔다."
김수희 : "대마초 사건 당시에 나의 결백을 주장하고 싶었지만, 남편 주변의 조직폭력배와 같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내 상황에서 나 스스로 몇마디 변명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김수희는 대마초 사건과 이혼, 그리고 이런 언론의 무책임한 행태 등으로, 일본으로 진출하게 됩니다.
김수희 : "그 시기에 전 남편과 이혼을 했고, 세상에는 얻는게 있다면 잃는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어머니가 굉장히 보수적이신데 내가 이혼을 하고 나서 3년 동안 집밖으로 두문불출했고 결국 종교까지 바꿨어요."(불교->천주교)
김수희 : "이런 모든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너무합니다를 일본말로 바꿔서 일본 기획사와 계약 후 활동했다."
김수희(가수) 결혼 남편 김태식 나이차 직업 결혼스토리 자녀
일본에서 잠깐 활동하던 당시 김수희는 연로한 어머니와 어린 딸이 눈에 밟혀 결국 일본 기획사의 양해를 구하고 2년 후 국내로 다시 복귀합니다.
그리고 이후 1990년 2월 제주도에 방송 출연을 하기 위해 방문했다가 재혼 남편 김태식을 만나게 되었고, 둘은 곧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김수희와 남편 김태식 두 사람의 나이차는 둘 다 1953년생인 70세로 동갑이라고 합니다. 당시 김수희 남편 직업은 제주 MBC PD로, 제주 MBC 정오의 희망곡 연출자 겸 DJ로 활동한 바 있습니다.
또한 김태식 역시 초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었고 그러다보니 더 쉽게 가까워질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약 1년 반 정도의 연애를 거친 다음 김수희는 김태식과 1991년 10월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김수희 : "(결혼을) 한 번은 실패했다. 두 번은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둘이 사는 것에 대한, 사랑에 어떤 정의를 내려야 하나 싶었다. 재혼을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걱정한 게 혼자 있으면서 혹여라도 무절제한 생활을 할까 걱정했다. 어머니가 결혼하고 안정된 가운데 노래하길 바랐다."
김수희는 그렇게 어머니의 중매로 두 번째 결혼에 골인, 이후 아들 김재훈을 낳게 됩니다. 이에 첫번째 결혼에서 딸을, 두번째 결혼에서 아들을 얻어 슬하에 1남 1녀를 두게 됩니다.
김수희(가수) 남편의 헌신
그런데 김수희 남편 김태식은 김수희에게 무척 헌신적이라고 합니다.
김수희 : "2009년 스케줄 때문에 이동하던 중 큰 교통사고가 났다. 하반신 마비가 올 수 있는 경고까지 받았다. 8개월간 누워 지냈다. 당시 누군가는 내 대소변을 받아야 했다."
김수희 : "남편이 간병을 해줬었는데 아무리 남편이어도 치부를 보이가 싫어 그냥 쫄쫄 굶었다. 일주인 정도 굶으니 탈수 증상이 나타났다. 의사가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김수희 : "남편이 '여보 부부란 전생의 악연이 만나는건데 난 당신한테 진 빚이 많은가보다 그냥 편하게 나한테 맡겨'라고 말했다. 남편이 7개월동안 24시간 내 대소변과 수발을 맡았다 그땐 미안해서 고맏다는 말을 못했는데 정말 미안했고 감사하다."
하지만 남편의 헌신 덕분인지 김수희 역시 결혼 이후 가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김수희 : "저는 보이는 것보다 내성적이다. 정말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눈도 못 마주쳤다. 남자가 대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스타일이었다. 순정형이다. 집에서는 가정에 충실하다. 손수 김치 간장 다한다. 결혼이라는 건 정확한 답이 없다 싶더라. 좀 힘들어도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수희(가수) 딸 이순정(이선민)
한편, 김수희 딸 이선민은 1980년 12월 24일생으로 올해 나이 43세가 되었는데요,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으며, 1999년 써니라는 예명으로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이후 소녀시대 써니가 유명해지면서 그 이름을 포기하고 이지후라는 예명으로 바꿔 활동하다가 다시 이순정이란 이름을 바꿉니다.
이선민 : "내가 기 쎈 언니 이미지로 보인다고 해서, 앞으로 순하고 순탄하게 가라는 의미로 작사가 이건우 선생님께서 나에게 새 예명을 지어주셨다. 바로 이순정이란 이름이다."
그런데 김수희 딸 이선민 역시 어머니인 김수희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됩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어린 나이에 가수로 데뷔했고, 짧은 활동 후에 곧 임신을 해서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후 이선민은 총 3 아이의 엄마가 됩니다. 이선민(이순정)은 엄마인 김수희와 몇몇 방송에 출연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이상 가수 김수희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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