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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윤항기가 11월 6일 KBS 가요무대에 출연합니다. 이에 윤항기 나이 집안 프로필 아내 아등 여동생 윤복희 근황 등 관심이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윤항기에 대해 알려진 정보를 모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가수 윤항기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종교 학력 현직
가수 윤항기는 1943년 9월 15일생으로 올해 나이 80세입니다. 윤항기 고향은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보령군(현 보령시)이며, 가족으로는 아버지 윤부길과 어머니 성경자, 형 윤영기, 누나 윤수현, 여동생 윤복희, 그리고 부인 정경신과 슬하에 1남 4녀를 두고 있습니다.
윤항기 종교는 개신교(장로회)이며, 학력은 연세대학교 종교음악학과 학사, 미국 미드웨스트 신학대학교 신학과 학사,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교회음악학과 음악학 석사,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과 신학 석사, 신학 박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윤항기는 현재 예음예술종합신학교 총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명예회장, 한국예술사관실용전문학교 학장으로 재직중에 있습니다.
가수 윤항기 집안 가족
윤항기 아버지는 현재 서울대 음대의 전신인 경성음악전문학교 제 1회 졸업생으로 성악과 작곡을 전공하고 일본 유학을 한 엘리트로, 한국 현대 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천재 예술가 고 윤부길(1912-1957)입니다.
윤항기 : "아버지는 ...연극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직접 대본을 쓰는 것은 물론, 무대와 의상을 디자인하고 연기까지 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윤항기 : "오페레타부터 악극 운동까지 주도했던 예술계의 선구자, 한국 현대 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천재 예술가, 윤부길이 바로 우리 아버지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무용수로 성경자라는 본명보다 고향선이라는 예명으로 더 유명한 악극계 스타였다고 합니다. 천재 무용가 최승희의 제자였던 어머니는 일본 유학시절 아버지를 만나 라미라가극단에서 함께 활동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윤항기 10세, 윤복희 7세 때 공연 중 사망했다고 합니다.
윤항기 여동생 윤복희는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 아들인 주노(본명 윤준호)는 CCM 음악 가수로 현재 CCM 음악 보컬 그룹 큐브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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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윤항기 과거
윤항기는 어릴때부터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윤항기 : "그 시절 아버지는 스타였지만 바쁜 중에도 젖먹이인 나를 꼭 데리고 다니셨다고 한다. 지금도 아버지가 차를 타고 나 윤부길이야 한마디만 하면 시골버스나 기차에서 서로 모시려고 하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윤항기 : "그런 아버지가 어린 내 눈에는 얼마나 대단해 보였는지 모른다...아버지를 보면서 나도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노래는커녕 극장에 얼씬도 못하게 하셨다."
윤항기 : "심지어 아버지는 내가 친구들과 구슬치기나 딱지치기 놀이를 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내가 공부하기를 바라셨다...아버지는 마지막까지 내게 공부하라고 당부하셨다."
이유는 암울한 시대, 신산한 예술가의 삶을 아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요, 하지만 아버지는 자식인 그에게 예술가로서의 끼외에 주신 것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윤항기의 어린시절은 온통 결핍과 가난, 그리고 온통 피눈물로 얼룩져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어느날부터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런 날이면 여지없이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이후 아버지의 마약 중독으로 인한 생존의 극한 점에서 윤항기는 어머니마저 악극단 지방 공연 중 심장마비로 객사하는 비통함을 겪었고,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까지 겪게 됩니다.
윤항기 : "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으셨다. 입원을 하니까 어머니께서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아버지 입원비와 생활비를 버셨다. 그런데 어머니가 유랑극단 따라서 공연을 가셨다가 무대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윤복희 : "7살 나이에 삶을 마감할 생각을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죽으면 엄마에게 갈 거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엄마에게 가고 싶었다.
윤항기 : "아버지도 어머니를 자기가 죽였다라고 자책하셨다. 자책감으로 몇 년 동안 힘들어하시다가 결국 3년 후 돌아가셨다."
그렇게 행복했던 가정은 파탄나고 윤항기 윤복희 어린 두 남매는 청계천 길거리로 내몰리는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어려운 환경에서 그를 이끌어준 것은 다름 아닌 음악.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전업가수로 미 8군 무대에서 노래해야 했던 동생 윤복희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덩달아 가수를 시작, 결국 아버지의 유지나 다름없는 공부를 일찌감치 접고 가수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가수 윤항기 활동 이력
윤항기는 이후 1959년 작곡가 김희갑이 악단장으로 있던 에이원쇼를 통해 미 8군 쇼에서 데뷔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1960년 8월 해병대 병 110기로 입대하여 군악대 사병으로 복무합니다.
그리고 이후 전역한 뒤에는 1964년 대한민국 최초의 록 음악 밴드라고 할 수 있는 5인조 그룹 키보이스를 결성, 그해 독집 앨범 그녀 입술은 달콤해를 발표하게 됩니다.
참고로, 키보이스는 1963년에 결성된 전설의 5인조 그룹으로, 윤항기가 드럼을 맡고, 일렉 기타는 김홍탁, 보컬이 유희백, 키보드와 베이스는 옥성빈과 차도균이 담당했던 국내 최초의 록밴드로, 이 그녀 입술 앨범은 국내 그룹사운드의 첫 번째 앨범이 됩니다.
1960년대 당시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 장르가 트로트였던 것에 반해 윤항기는 당시 사람들에게 생소한 음악 스타일인 그룹 사운드를 했던 것인데요, 당시 키보이스는 해변으로 가요(1969년)라는 노래를 전국적으로 히트시키며 60-70년대 젊은이들의 우상이자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됩니다.
윤항기 : "대단했죠, 그때 인기는 요즘 아이돌 가수 못지 않았어요. 키보이스는 60년대 젊은이들의 해방의 분출구였어요. 신중현씨가 만든 에드 포와 양대 산맥을 이뤘죠. 연고전보다 열기가 더 뜨거웠을 거예요."
윤항기 : "보통 라이벌이 아니었거든요. 대학 축제나 쎄시봉 등에서 연주 활동을 하면서 여학생 팬들이 부쩍 늘어났어요. 나중에 해변으로 가요 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전국구 스타가 됐죠"
이후 윤항기는 키 브라더스를 거치며 그룹 사운드 생활을 하다가 1974년 솔로 가수로 데뷔, 이후 별이 빛나는 밤에 장미빛 스카프, 이거야 정말,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어떡하라고 등의 히트곡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후 1975년에는 영화 나는 어떡하라고의 주연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하기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지만 이후 윤항기는 1986년 웹컴투코리아를 마지막으로 음악활동을 중단하고 뜻밖에도 미국으로 가서 신학을 공부해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가수 윤항기 목회자가 된 이유
윤항기는 이렇게 여동생 윤복희와 함께 60-70년대 대중음악의 기틀을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와 명예를 한손에 거머쥐며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던 그가 하루 아침에 목회자가 됐다는 소식은 당시 충격적인 뉴스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윤항기 : "한창 잘나가던 1978년에 폐결핵에 걸려 쓰러졌어요. 폐결핵 말기(4기)라 약도 없었죠.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였고, 그냥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산송장이나 다를 바 없었어요."
윤항기 : "병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1년 이상 가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망연자실해서 삶을 포기하고 있을 때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제 아내와 동생이 저를 교회로 인도했지요."
윤항기 :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앙을 갖게 됐고, 기도원에 다니면서 금식하고 주사 맞아가면서 투병 생활을 했어요. 그때 제가 저에게 다시 한번 새로운 삶을 주신다면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 기도를 했어요."
윤항기 : " 병원에서는 1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던 제가 나중에 완쾌했어요. 기적이라는 말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요. 다시 활동을 하면서도 그게(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 기도한 것) 계속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결국 86아시안게임을 끝으로 과감히 접고 신학대학에 진학해 훗날 목사가 됐던 겁니다."
결국 윤항기가 고민끝에 선택한 길이었던 것인데요, 윤항기는 그렇게 1986년 돌연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 공부를 한 뒤 90년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목회자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하지만 목회자의 길에 들어선 뒤에도 윤항기에게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특히 그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결국 신앙의 힘은 그를 아버지와 세상에 먼저 손을 내밀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후 윤항기는 음악으로 많은 이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어 음악신학원(현 예음종합예술원)을 설립하고 교단(현 예장예음)까지 세우게 되는데, 이에 대해 2018년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윤항기 : "이 나이에 은퇴를 하고도 다시 가수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감사하죠. 어떤 목표를 갖고 분명한 목적 의식으르 갖고 일을 하는 자체가 나름의 건강 비결이 아닐까 싶어요. 정신이 건강해지니까 자연히 육체적인 건강도 따라오는 것 같더라고요"
가수 윤항기 근황
이후 윤항기는 2014년 예음교회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나 걱정을 말아요(2014) 등의 곡을 발표하며 다시 가수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또 가요무대 등과 아침방송, 예능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며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그런 가운데 이번에 또 가요무대에 출연하게 되었네요.
가수 윤항기 결혼 아내(부인) 정경신 나이차, 누구?
윤항기는 부인(아내) 정경신과 1973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벌써 50년이 된 것인데요, 당시 두 사람은 어려워서 신혼 여행을 가는 대신 결혼식 당일날 동대문운동장에 축구 구경하러 갔다고 합니다.
윤항기 아내 정경신 나이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가수 윤항기 아내(부인) 정경신 결혼스토리 자녀
윤항기는 아내 정경신을 그가 한창 인기가 있을 때 가수와 한 여학생 팬 사이로 만났다고 합니다. 아내 정경신은 당시 숙명여대 가정과 1학년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윤항기 : "내가 키보이스로 활동할 당시에 아내(정경신)는 내 공연때마다 따라다니던 열성팬이었다. 나 역시 아내를 보고 첫 눈에 반했다."
윤항기 : "그런데 아내의 집안은 당시 광산업을 하던 유복한 가정이었고, 우리의 교제를 반대했었다. 그래서 아내의 외출을 막기 위하여 처가에서 머리카락을 몽땅 잘라서 집안에 가둬두기도 했다"
아내 정경신 : "당시 키보이스가 인기가 많았지만, 젊은 친구들 위주였고 어른들은 잘 모르셨다. 그래서 부모님은 남편을 그저 딴따라로만 생각하셨다"
결국 아내 정경신은 집에서 탈출했고, 두 사람은 이태원 여인숙에서 신접 살림을 차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첫 아이를 낳은 뒤인 1973년에야 처가의 인정을 받고 정식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윤항기 : "가족으로부터 축복받지 못한 결혼 생활을 시작했기에 아내가 마음 고생, 육체적인 고생을 많이 했다"
이후 윤항기 부부는 딸 4명에 아들 1명을 낳습니다. 그리고 연이은 히트곡으로 남부럽지 않은 연예계 생활을 했던 윤항기는 당시엔 가족과 아내보단 바깥일에 더 집중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가수 윤항기 폐결핵 투병, 완치, 이후 근황
윤항기는 마약 중독자였던 아버지를 미워했고 그런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던 것입니다.
윤항기는 "베트남 위문 공연을 할 때 한번은 폐결핵에 걸려서 귀국하기도 했다. 한때 볼링에 미쳐서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빚을 얻어 재산을 탕진할 때도 있었다. 또한 밤마다 유흥업소에서 노래를 부르고 끝나고 나면 주변 사람들과 밤새 진탕 놀았다"
그러던 중 그는 크나큰 시련을 맞이하게 됩니다. 활동 중 몸에 이상을 느껴 찾은 병원에서 폐결핵 말기 판정을 받고, 6개월 시한부가 선고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된 것입니다.
윤항기 : "인기 가도를 달리던 1977년 가수왕 기념 축하 공연장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당시에 의사가 폐결핵 말기라며 6개월도 살기 어렵다고 했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윤항기 : "그런 나를 살린 사람이 바로 아내였다. 당시 폐결핵은 강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떠났다. 병원도 갈 수 없었다. 그런데 아내는 나를 떠나지 않았고, 주사법(주사기 사용법)까지 배워서 나를 간호했다. 아내 덕분에 내가 살 수 있었다"
아내 정경신 : "남편이 때로는 미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가장 좋았던 모습은 가요를 시작하기 전에 미 8군에서 활동할 때의 모습이었다. 당시 남편이 레이 찰스 노래를 참 잘했다"
아내 정경신 : "나중에 남편 때문에 속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레이 찰스 노래를 들으면 그때 윤항기가 미 8군에서 활동하던 시기가 생각나고 남편에 대한 미운 감정이 해소됐다"
결국 6개월 시한부 인생이었던 윤항기는 아내의 간호로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었고 이후 종교적으로 귀의하여 음악 목사로 활동하기까지 하게 됩니다.
국내 최초로 음악목사가 된 그는 1990년 음악신학교를 세우며 후배 양성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참고로, 윤항기는 예음종합예술원 학장, 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 예음교회 담임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음악학과 겸임교수,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음악학과 강사를 역임합니다.
윤항기는 그렇게 음악 목사로 25년동안 활동하다가 정년 퇴임한 그는 다시 가수로 컴백, 이후 2015년 데뷔 55주년 기념 음반 걱정을 말아요를 발표합니다.
이 노래는 윤항기가 직접 작사 작곡하고 아내 정경신이 작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후 윤항기는 지난 2017년 완전 좋아 딱 좋아 라는 신곡도 내고 콘서트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수 윤항기 여러분
하지만 그가 목회자에서 다시 대중가요를 부르는 가수로 컴백한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고 합니다.
윤항기 : "내가 전에 만든 곡의 사연을 알면 그렇지 않다. 여러분이 대표적이다. 이 곡은 나와 동생 복희가 큰 어려움을 당했을 때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가슴으로 쓰고 부른 노래다."
여러분!은 MBC 나는 가수다에서 임재범이 불러서 화제가 됐었는데요, 실제로 이 노래는 윤항기가 기적적으로 완쾌된 뒤 지은 노래라고 합니다.
실의에 빠진 여동생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신앙적 체험을 녹여내 만든 이 노래는 1979년 서울국제가요제에서 그랑프리(대상)를 수상했습니다.
그해 6월 20일 지구레코드에서 발매된 서울국제가요제 실황 앨범 자켓에는 가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후 윤복희 윤항기 남매가 격렬하게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극적인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1979년 6월 2일 MBC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주최한 제 2회 서울국제가요제에는 세계 12개국을 대표하는 18명의 가수들이 나와 치열한 경연을 펼쳤는데, 한국 대표로 출전한 윤복희는 오빠 윤항기가 작사 작곡한 여러분을 불러 영예의 그랑프리를 거머쥐었습니다.
수상 직후 윤항기는 "윤복희가 외로울 때면 위로해줄 사람은 누구? 바로 여러분!"이란 인사를 건넸고 윤복희는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앵콜송을 불렀습니다.
폐결핵 말기 선고를 받고 절망 속에 몸부림 치던 윤항기는 자신의 동생 역시 이혼의 아픔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여러분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윤항기 : "여동생(윤복희)이 20살 어린 나이에 결혼에 한번 실패했고, 또 1977년 가수 남진과 재혼했지만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그때 동생은 방 밖으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우울증에 시달렸다."
윤항기 : "그래서 만든 곡이 바로 여러분이었다. 어느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레마로 성경 구절을 들려주셨어요. 그게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인데요,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라고 시작하는 말씀이었죠."
윤항기 : "그 맗씀을 받고 깊이 묵상하면서 그 곡을 쓰게 된 거죠. 종교적인 말로 얘기하자면 제가 만든 곡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로 하여금 그 곡을 쓰도록 만드신 거예요"
여동생 윤복희는 1946년 생으로 올해 나이 75세로, 윤항기보다는 3살 아래입니다. 윤항기, 윤복희는 지난 2018년 말 남매가 나란히 가요무대에 출연하게 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가수 윤항기 근황
윤항기는 한동안 아들 내외와 함께 산다고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그 이유에 대해 윤항기는 지난 8월 방송된 동치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습니다.
윤항기 : "저희 아들은 조그만한 대학교 실용음악학과 교수다. 월급이 많지 않아서, 아이들을 낳고 나서 살림이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같이 살게 됐는데, 걔들은 관리비, 생활비도 없다"
윤항기 : "저는 아예 며느리에게 생활비 카드를 줬다. 손주들 학원비도 매달 따로 보태준다. 대신 최대한 매달 저축해서 나중에라도 독립하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벌써 13년째다"
하지만 이후 지난해 한 방송에서는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아파트 내부를 직접 소개하며 아들 며느리 부부와 함께 살다 분가시키고 부부 둘이서만 살고 있는 근황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윤항기 : "15년 가까이 아들 며느리 부부와 함께 살다 분가시켰다. 이제 우리 부부만 살고 있다. 제 2의 신혼이라고 봐도 된다. 제가 주로 이 집의 머습이다."
아내 정경신 : "청소, 쓰레기 치우는 거, 빨래도 가끔 도와준다."
이번에 가요무대에 출연하게 된 윤항기인데요, 앞으로도 꾸준히 건강하게 활약 이어가는 모습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가수 윤항기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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