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가수 쟈니리가 12월 5일 KBS 가요무대에 출연합니다. 이에 쟈니리 나이 가족 프로필 근황 등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가수 쟈니리에 대해 알려진 정보를 모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쟈니리(가수) 프로필 본명 고향 나이 가족 종교 학력

 

가수-쟈니리

 

가수 쟈니리의 본명은 이영길입니다. 쟈니리 고향은 만주국 지린 성 지린(현 중화인민공화국 둥베이 지방 지린 성 지린) 출생이며, 쟈니리 나이는 1938년 8월 29일생으로 올해 나이 84세입니다.

 

쟈니리 종교는 개신교라고 하고요, 이외 쟈니리 가족 학력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지금의 아내 윤삼숙씨와 살고 있습니다. 

쟈니리(가수) 집안 과거

 

가수-쟈니리

 

쟈니리는 만주국 지린성에서 연극배우인 중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때 국민정부 시대 중화민국 대륙 본토 장쑤 성 상하이(현 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다고 합니다.  

 

쟈니리 : "아주 어릴 적 길림에서 어머니가 연극무대 위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네 아버지라고 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쟈니리는 이후 어머니 손에 이끌려 조선 땅(한국)에 귀국하여 외가가 있는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이후 6.25 전쟁(한국전)이 발발하자 혼자 경상남도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와 그곳에서 제 7항만 사령관인 미국인(렉스 무섬)에게 입양됐다고 합니다. 

 

 

그때 쟈니리의 나이가 13세였다고 하는데요, 당시 쟈니리의 집이 부산 대신동에서 제일 큰 집이었고, 이기붕이 쟈니리의 집 옆에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풍요하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고 합니다. 

 

쟈니리는 당시 취미 삼아 피아노 치고 노래 부르던 수양아버지 옆에서 자연스럽게 미국의 재즈와 스탠더드 팝송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고, 외국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고 합니다.

 

이에 아들의 목소리가 미국의 천재 가수 쟈니 마티스를 닮았다 하여 양부가 지어준 이름이 쟈니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는 그 당시의 음악들은 쟈니리의 음악적 자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쟈니리는 그렇게 양부의 노래를 따라 부르다 처음으로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고, 항상 음악 있는 곳에 쟈니리를 데리고 다니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입양된 지 3년 만에 양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불행이 찾아왔고, 영원할 것 같았던 따스한 행복의 순간들은 끝이 나고 그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쟈니리(가수) 데뷔 및 활동

 

가수-쟈니리

 

이후 쟈니리는 1958년에 서울에 올라와 이듬해인 1959년에 극단 쇼 보트의 단원으로 데뷔하여 팝송을 우리 말로 바꾼 곡들을 불렀고, 1961년에 미 8군 무대에서 가수 활동을 시작, 1966년에 신세기레코드에서 뜨거운 안녕을 첫 앨범으로 발표해 엄청난 대박을 내게 됩니다. 

 

쟈니리 : "1966년 첫 취입한 레코드엔 제 울음이 담겼어요. 불 꺼진 스튜디오에서 보면대 하나 앞에 두고 녹음하는데 고아처럼 자란 신세가 서럽고,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말도 못하게 울었어요."

 

 

쟈니리 : "필이 오버했다고 다시 녹음하자는 말이 나왔지만 제가 전속된 신세계레코드사 사장이 그냥 내보내자고 했어요. 나오자마자 대박 났지요. 그때는 가수들이 피카디리 단성사, 명동, 시공관 같은 극장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쟈니리 : "하루에 서울과 지방 등 4곳을 돌았어요. 극장 한곳에서 받은 출연료가 15만원, 당시 500원이면 애인과 둘이 시발택시 타고 영화 보고 점심 먹으면 딱 됐던 시절이었으니까 대단히 큰 돈이었어요"

 

쟈니리 : "서울 부산 간 대한항공 노선만 있던 시절이었어요. 김포공항 가는 길이 비포장이라 힘들었어요. 비행기 표가 3만원이었던 걸로 길억해요."

 

쟈니리 : "시발 차 라고 미군이 쓰건 드럼통을 두들겨 만든 지프차를 타고 다녔어요. 그거 50만원에 샀던 가, 운전수 두고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끼니 때우며 공연 다녔어요. 그 차도 아무나 갖지 못했던 시절이었어요"

 

쟈니리(가수) 60년대 최고의 스타로

 

가수-쟈니리

 

실제로 그는 60년대 최고의 스타였고, 한국의 레이찰스 혹은 제임스 딘이라고도 불렸으며, 당시 청바지를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했습니다. 찢어진 청바지에 운동화, 장발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을 정도였습니다. 쟈니리는 당시 나훈아 조용필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쟈니리 : "주로 여성 팬들이었어요. 모두가 살기 힘들어 딸들은 대학에 보내지 않았던 시절,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먹고 자고 일하며 가족 생계를 짊어진 그들을 두고 공순이라는 말도 생겨났지요. 그들의 유일한 낙은 극장에서 가수 노래 듣는 거였어요"

 

 

쟈니리 : "당시 라이벌이었던 가수 정원은 허무한 마음으로, 저는 뜨거운 안녕으로 최고 인기를 얻었어요. 사회자가 두 사람을 소개하는 순간 극장 천정이 날아갈 정도였어요. 요즘 오빠부대 와는 상대도 안 됩니다. 심지어 학교도 안가고 저를 따라다닌 여자들이 많았어요"

 

쟈니리는 또한 당시 뜨거운 안녕과 같은 시기에 사노라면도 발표했는데요, 역시 나오자마자 히트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노라면은 1년 후에 금지곡이 돼 사람들 기억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쟈니리 : "박정희 정권에서는 금지가 다반사였어요. 원래 곡명이 내일은 해가 뜬다인데 해가 오늘 뜨지 내일 뜨느냐고 해서 금지됐다고 해요. 저도 자세한 내막은 몰라요"

 

쟈니리의 히트곡으로는 뜨거운 안녕, 사노라면, KBS 드라마 제 3지대 주제곡 그리고 팝송 오 론 썸 미를 번안해 부른 오 우짤코 등 손꼽을 정도인데요.

 

이외에도 쟈니리는 통금 5분전, 내일은 해가 뜬다 가 수록된 독집 음반 쟈니리 가요 앨범을 취입하기도 했고, 또 영화 청춘대학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쟈니리(가수) 미국 이민 이후 근황

 

가수-쟈니리

 

쟈니리는 이후 197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이후 1976년 잠시 귀국해 재기하여 1978년에는 이훈이라는 예명으로 재즈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이후 1980년대 초 결국 하와이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쟈니리 : "제가 건달들 때문에 가요계를 멀리했어요. 그들은 공짜로 노래를 해 달라거나 심지어 돈을 요구하기도 했어요. 연예인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아주 달랐어요."

 

쟈니리 : "우리를 보면 딴따라 간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그런 게 싫어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갔어요. 이후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지냈어요"

 

 

쟈니리 : "처음엔 LA 한인사회에서 노래를 불렀지만 돈이 안 돼 그만 두고 식당에서 배달이나 호텔 주방장 보조 일을 했어요. 1년 정도 저축하면 잠시 지낼 만해요. 노래 부르는 거보다는 맘이 편했어요"

 

이후 쟈니리는 1995년 9월에는 한국방송공사 빅쇼에서 가수 정원과 우정의 라이벌 무대 특집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고, 2021년에는 신곡 바보사랑을 발표하고 활동 중이며, 여러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또다시 가요무대에 출연하게 되었네요.

 

* 이애란(가수) 나이 집안 프로필 결혼 근황

 

이애란(가수) 나이 집안 프로필 결혼 근황

트로트가수 이애란이 9월 6일 TV조선 화요일은 밤이 좋아에 출연합니다. 이에 이애란 나이 결혼 등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래서 오늘은 가수 이애란에 대해 알려진 정보를 모아 정리

jmsy0519.tistory.com

 

쟈니리(가수) 세 번의 이혼과 네 번의 결혼

 

가수-쟈니리

 

올해 나이 84세인 쟈니리는 세 번의 이혼과 네 번의 결혼을 한 이력이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결혼과 이혼을 많이 하게 된 이유는 바로 자유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쟈니리는 그동안 방송을 통해 본인의 이혼사실과 이혼 이유 등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언급해 왔는데요, 쟈니리는 자신의 첫번째 부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쟈니리 : "톱스타가 된 이후 세 명의 아내와 이혼했다. (첫번째 아내는) 대학을 다니던 여자였다. 자취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애가 생겼다. 결혼생활은 20년 정도 했다. 첫 아내를 만나던 중 뜨거운 안녕이 히트가 됐다."

 

쟈니리 : "그 사람은 나랑 살고 싶어했다. 헌신을 다했다. 어릴 때 너무 고생해서 톱스타가 되고 수입도 좋아지니 마음껏 돈을 쓰고 싶었다."

 

쟈니리 : "아내의 간섭이 불편해지자 가정불화가 일어났다.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니지만 여러 여자를 만나고 나니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쟈니리는 두번째 아내(부인)와 세번째 부인과의 결혼과 이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쟈니리 : "공연을 하던 중에 사업을 하는 (두번째) 아내를 우연히 만났다. (이후 두번째 아내와 결혼을 했지만) 2-3년 만에 이혼을 했다. 두번째 이혼한 이유 역시 자유 때문이었다."

 

쟈니리 : "세번째 부인은 매사에 엄격했다. 재미있는 내가 재미가 없게 되더라."

 

쟈니리(가수) 네번째 아내(부인) 윤삼숙

 

가수-쟈니리

 

이후 쟈니리는 지금의 아내이자 네 번째 부인인 윤삼숙 씨와 결혼해 지금까지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쟈니리는 다섯번째 결혼은 안 된다 싶어 누르고 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쟈니리는 네번째 아내와 결혼하자마자 식도암과 임파선암 판정으로 남은 삶이 막막했지만 현재 아내의 극진한 간호와 정성이 그를 다시 살게 했다고 합니다. 

 

쟈니리 : "어느날 답답함을 느껴서 병원에 갔는데 식도암 말라더라. 그때는 미국시민권이 있어서 의료보험 적용도 안됐다. 그때 지금의 부인이 간호를 해줬다. 네번째 부인 윤삼숙을 만난 것은 운명이다. 내가 살려고 만난 것이다. 아내가 저당을 잡혀서 내 병을 치료해줬다"

 

쟈니리 네번째 아내(부인) 윤삼숙 : "고맙다는 소리도 듣기 싫다. 사람들은 내가 살렸다고 하는데 내가 뭘 살린 거냐. 의사가 살린 거고, 본인이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산 것이다."

 

 

쟈니리 네번째 아내(부인) 윤삼숙 : "친구를 통해 남편을 처음 알게 됐다. 당시 남편이 혼자 생활을 했는데 내가 음식을 만들어서 자주 나눠줬다. 그러다보니 교제를 하게 됐다. 한번은 집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빨래, 청소와는 거리가 먼 보통 한국남자들과 달리 남편의 집은 매우 깨끗했다"

 

쟈니리 네번째 아내(부인) 윤삼숙 : "이불 속에서 향수 냄새가 나고 화장실도 먼지하나 없이 깨끗했다. 너무 잘 정돈되어 있어서 너무 마음에 들었다. 쟈니리와 결혼 당시 내 결정에 확신이 있었다"

 

쟈니리는 이처럼 네 번의 결혼을 했지만, 아내에 대한 진실성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쟈니리는 "난 보헤미안처럼 자유롭게 산 자유인이었지만 이제는 내 곁에 집사람이 있어 그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가요무대에 출연하게 된 쟈니리인데요, 앞으로도 건강한 모습으로 활동 이어가는 모습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가수 쟈니리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 추천 글 -> 김국환 나이 과거 프로필 아내 아들 딸 근황

 

김국환 나이 과거 프로필 아내 아들 딸 근황

가수 김국환이 8월 30일 TV조선 화요일은 밤이 좋아에 출연합니다. 이에 김국환 나이 아내 아들 딸 근황 등 가족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가수 김국환에 대해 알려진

jmsy0519.tistory.com

* 추천 글 -> 윤태화(가수) 프로필 나이 결혼 남편, 누구?

 

윤태화(가수) 프로필 나이 결혼 남편, 누구?

스타다큐 마이웨이 가수 윤태화 가수 윤태화가 4월 3일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합니다. 미스트롯2를 통해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가수 윤태화가 지난달 아름다운 새신부가 된다는

jmsy0519.tistory.com

 

728x90
댓글